백 번 속아주기
유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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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7 05:28
저자 : 유봉희
시집명 : 몇 만년의 걸음
출판(발표)연도 : 2006년
출판사 : 문학아카데미
백 번 속아주기
유 봉 희
바람 부는 풀튜기 바닷가 모래언덕을 걷다가
앞에서 비틀거리는 고리물떼새 한 마리를 보았다
몹시 다쳐서 쩔뚝거리며 찢어진 날개를 질질 끄는 새, 저걸 어쩌나!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따라가는데 갑자기 하늘로 휙 날아오른다
아하! 이곳을 잘 살펴보면 고리물떼새 새끼들이 숨겨져 있겠지
파도소리가 자분자분 두드려 주어도 아직은 털 보송보송 일어나는
새끼들.
엄지만한 저 어미새 머릿속 어딘가에 저런 능청스러움이 숨어 있을까
새의 시조 아르케오프테릭스*에서부터 그려왔을 머릿속 지도는
세상의 모든 어미가 공유하겠지만 어떤 어미도
새끼를 먹이사슬 넘어로 던질 수 없다 저 새는 어떻게
체념의 무거운 닻을 조그만 가슴에 내려놓고 있을까
조그만 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백 번이라도 싱싱하게 속아 주는 일 뿐이구나.
*아르케오프테릭스(Archaeopteryx): 가장 오래된 시조새(약 1억3800만년전)
유 봉 희
바람 부는 풀튜기 바닷가 모래언덕을 걷다가
앞에서 비틀거리는 고리물떼새 한 마리를 보았다
몹시 다쳐서 쩔뚝거리며 찢어진 날개를 질질 끄는 새, 저걸 어쩌나!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따라가는데 갑자기 하늘로 휙 날아오른다
아하! 이곳을 잘 살펴보면 고리물떼새 새끼들이 숨겨져 있겠지
파도소리가 자분자분 두드려 주어도 아직은 털 보송보송 일어나는
새끼들.
엄지만한 저 어미새 머릿속 어딘가에 저런 능청스러움이 숨어 있을까
새의 시조 아르케오프테릭스*에서부터 그려왔을 머릿속 지도는
세상의 모든 어미가 공유하겠지만 어떤 어미도
새끼를 먹이사슬 넘어로 던질 수 없다 저 새는 어떻게
체념의 무거운 닻을 조그만 가슴에 내려놓고 있을까
조그만 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백 번이라도 싱싱하게 속아 주는 일 뿐이구나.
*아르케오프테릭스(Archaeopteryx): 가장 오래된 시조새(약 1억3800만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