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도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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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 - 도종환

poemlove 1 8180
저자 : 도종환     시집명 : 접시꽃 당신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여기 불우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민들레만한 작은 꿈 하나 이루지 못하고 간
제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있읍니다
그는 이 세상 사는 동안 당신을 가쁘게 부르진 않았지만
아픔도 남루함도 소리나지 않도록 소중히 싸안은 채
착하게 살려 했읍니다
이 세상에 해야 할 많은 일을 남겨두고
당신이 부르실 때 응답하며 깄읍니다
그를 데려가심으로 제가 받은 눅눅한 슬픔보다
이루고 싶던 소박한 삶과 많은 날들을 두고
황망히 달려가야 했던 찢어질 듯한 가슴을 더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제 사랑하는 사람을 급히 데려가야만 하는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려 생각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제 앞의 작은 십자가에 매달고
제가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 뜻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하시는 크고 놀라운 일들 중에 그 어느 것과 잇닿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당신은 지금 제가 흘리는 눈물을 조용히 바라보고 계십니다
제가 흘리는 눈물이 어디쯤서 그칠 것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이 한 알 한 알의 눈물들로 제 속 살을 정결히 씻고
어디서부터 멈추어 선 걸음을 다시 떼어가야 하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크나큰 아픔 속에 저를 남겨두시고
먼 거리에서 내려보고 계시지만
제가 당신의 뜻 안에 있음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다시 봄이 오고 싸리꽃이 지천으로 피고
장다리꽃밭 밑으로 보리이삭이 팹니다
타오르는 봄날 저를 이 땅의 물로 잇게 하시면
목마른 이의 가슴으로 흐르겠읍니다
어두운 땅 작은 불씨로 살아 있게 하시면
당신의 입김으로 활활 타오르며 남은 목숨 태우겠읍니다
한 포기 들풀로 저를 그늘진 땅에 꽂아두시면
매일매일 당신의 하늘을 품안에 품으며 있겠읍니다
오늘도 벽이 트이지 않는 저 거리에 한 덩이 돌로 버려두시면
뜨거운 손바닥으로 저를 찾는 이의 손안에 들겠읍니다
당신께서는 저 빗줄기가 언제 그치고
어느 때 꽃 지고 여름 열어야 하는지 헤아리고 계십니다
제가 이 슬픔 속에서
무엇을 더 깨달아야 하는지 물 속을 보듯 환하니 알고 계십니다
이제 한 번 죽음으로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며
이별의 큰 고통보다는 다시 만날 일 하나만을 늘 새로이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의 뜻 안에 죽을 수 있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1 Comments
김수미 2006.05.27 13:27  
당신이 부르실때 응답하며 깄읍니다 ->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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