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에게 바침 - 류시화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까마귀에게 바침 - 류시화

poemlove 0 9221
저자 : 류시화     시집명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1
까마귀가 한 마리 날아 왔다
그리고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 본다
전나무의 서리 묻은 가지 위에 앉아
검은 날개를 뽐 내는 까마귀
나는 아침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를 쳐다본다
인생은 결국 고독하며
누구나 삶에서 혼자인 것
나는 왜 미처 그 사실을 몰랐던가
까마귀는 알고 있었을까, 눈동자를 빛내며
전나무의 무거운 가지를 흔드는
까마귀, 나에게 말하라
네가 아는 비밀을
너는 저 눈부신 꿈들속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때로 반짝이는 것이 있어 바라보면
그것은 슬픔의 검은 신사
까마귀였다

2
나 어렸을 때에도
까마귀를 바라보며 서 있곤 했다
까마귀가 새벽 시간을 건너
나에게 말을 걸어 왔었다
나는 서리 묻은 돌길 위에 서서
까마귀의 눈을 바라 보며 생의 비밀을
꿈 꾸었다 언젠가 붙잡게 될 그것들을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시들고 말았는가
그리고는 또 어느 해가 되면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전나무의 무거운 가지는 비어있었다
까마귀는
푸른 허공에 검은 날개를 펴고
세월의 지붕들 위로 날아가 버렸다

3
밤이 되면 나는 까마귀와 함께 명상에 잠긴다
집 뒤의 전나무들은 주문을 외듯 수런거리고
까마귀와 나는 은밀하게 만난다
그의 눈이 내 눈 안에서 빛나고
그의 깃털이 내 몸을 덮는다
때로 공기처럼 가볍게 내 몸은 떠오른다
나 밤의 구름위로 올라가리라
까마귀와 함께
그 곳에서 예언자적 시를 노래하리라
구름들이 몰고 오는 시간 저 편의 것을 보리라
0 Comments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