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많은 비가 - 류시화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많은 비가 - 류시화

poemlove 0 11244
저자 : 류시화     시집명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1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 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무덤들이 산 아래 생겨났구나
풀과 나무들은 더 푸르러졌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푸르른 힘을 몰고 어디론가 흘러갔구나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선
어느 새 이 꽃이 지고 저 꽃이
피어났구나

2
그토록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떠갈나무 아래 선 채로 몸이 뜨거웠었다
무엇이 이 곳을 지나 더 멀리 흘러갔는가
한 번은 내 삶의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이보다 더 큰 떡갈나무가
밤에 비를 맞으며 내 안으로 걸어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얼마나 더 깊어지고
떡갈나무는 얼마나 더 풍성해졌는가

3
길을 잃을 때면
달팽이의 뿔이 길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빗방울이
때로는 나무 위의 낯선 새가
모두가 스승이었다
달팽이의 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나는 먼 나라 인도에도 다녀오고
그곳에선 거지와 도둑과 수도승들이
또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병들어 갠지스 강가에 쓰러졌을 때
뱀 부리는 마술사가 내게 독을 먹여
삶이 환 폭의 환상임을 보여 주었다
그 이후 영원히 나는 입맛을 잃었다

4
그 때 어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 속을 날아갔었다
밤이었다
내가 불을 끄고 눕자
새의 날개가 내 집 지붕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병이 더 깊어졌다
0 Comments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