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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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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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비단구두

靑山 0 2667
저자 : 이풍호     시집명 : 大田文學 제8호 pp. 17-26
출판(발표)연도 : 1993. 6     출판사 : 大田文學
발표일 1993. 6. 평론:  미국 Short-short story의 근황,  大田文學  제8호 pp. 17-26 / 한국문협 대전시지회/한국 대전.


비단구두

                                    폴 리 (이풍호 Paul Lee)*


  나는 예산(禮山) 근교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차령산맥과 황해 사이에 끝 없이 흐르는 무한천을 끼고 있는 구릉이며 널따란 평야는 언제나 내가 온화한 마음으로 좋은 기분을 갖고 자라도록 해주었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도회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순박한 매력이 있었다. 그들은 닷새마다 서는 장날이 오면 모두 명절 기분으로 자기들이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예산 자에 모여 부산하게 돌아다니고는 했다.
  내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를 도와드릴 때마다 상을 받던 것이며 아버지가 나를  아빠의 조수 라고 불러 주시던 일들이 생각난다. 상으로 받은 적은 돈은 돼지저금통에 그 속이 다 채워질 때까지 모았다. 그러다가 갖고 싶었던 것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이라고 생각되면 장에 나를 데려다 달라고 큰누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어느 상쾌한 봄 장날 아침, 누나는 집에서 20여 리나 떨어진 장까지 나를 데리고 갔다. 물룬 저금해 둔 돈 전부를 가지고. 장터는 벌써부터 형형색색의 시골 사람들이 섞인 채 크게 혼잡을 이루고 있어서 누나와 나는 쉽사리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때 나는 제각기 다른 수많은 상품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즐겁게 지냈다.)
 신기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사이에 나는 빨갛고 노란 예쁜 꽃과 초록색 줄들이 비단실로 수놓인 구두를 발견했다.
  참말로 예쁜 구두다! 꼭 갖고 싶어 라고 나는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그 구두가 정말로 신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구두값이 얼마냐고 사나이에게 물어 보았다.
 그 사나이는 잠깐 나를 쳐다보다가 재미있는 체하면서  야, 네가 사겠다면 아주 싼값에 주마 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달라는 구두값은 나로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큰 액수였다. 그래서 나는  누나, 제발  하면서 누나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누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누나는 나의 귀에다 낮은 목소리로  다음에는 꼭 사줄께 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너무 마음이 상해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어왔다.
 누나와 함께 장에 다녀와서는 한 달 동안이나 어머니가 장에 가실 때마다 그 예쁜 구두를 사다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가 장에 가시고 난 뒤 나는 동구 밖까지 나가 능수버드나무 밑에 앉아 어둠 속에서 열심히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어느 여름 초저녁, 장을 보고 오시던 어머니가 나에게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건네주시는 것이었다. 꾸러미를 풀어헤치자 아주 놀랍게도 그 안에는 가죽구두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아, 가죽구두가!?  그 구두를 보고 크게 실망한 나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어머니를 올려다 보았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허리를 굽히고 눈물로 젖은 나의 두 볼을 쓰다듬으시며  가엾은 아가, 네 발은 이미 비단구두를 신기에는 너무 커졌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두 발을 내려다 보았다.
 회상해 보면 그때는 내 스스로 어찌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번역: 영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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