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에 둘러싸인 외로움 건드리기 혹은 부활 -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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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에 둘러싸인 외로움 건드리기 혹은 부활 - 고정희

poemlove 0 4614
저자 : 고정희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성곽에 둘러싸인 외로움 건드리기 혹은 부활

 고정희


1.

마치 카프카의 &#039;성&#039;에 사는 케이, 성주 케이 같다고나 할까
나는 오늘밤 혁명을 꿈꾸네
동반자적 부활을 꿈꾸네
오만 오천 에이커의 평원 속에 있는
외로움의 집의 사건을 꿈꾸네

2.

확실한 알리바이를 지우기 위하여
눈 내리는 광야를 걷고 또 걸어
나는 그대 사는 성곽에 도착하네
오만 오천 에이커의 대평원 속에
이쁘게 패인 내 두 발자국을
하얀 눈이 내려 흔적을 지우는 모습은 엄숙하네
그래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란 자손과 친구를 만드는 것이란 부질없는 말을 했지
오만 오천 에이터의 외로움을 건너봐
인생은 부질없는 엄숙함이란 생각이 드네

3.

외로움 사람들의 눈물이 하늘로 올라가
눈이 되어 내려오는 밤이네
외로움에 둘러싸인 그대 성곽
단단한 빗장으로 고요한 그대 성곽 밑에서
나는 잠시 내가 지금 건너온 외로움의 연혁을 되돌아보네
지나온 길은 언제나 황혼빛이지
상처 자국마다 분홍 꽃잎을 달아주는 황혼의 따스한 손길이
내 박동을 진정시키네

4.

저 성곽의 삼엄한 경보장치를 뚫고
그대 모르게, 바람처럼
성곽을 빠져나올 한 외로움을 기다리는 일은 사뭇 비장하네
검은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달려나오는 그대 외로움과
천둥벌거숭이 내 외로움이 만나
두 손을 꼬옥 맞잡고
세상이 그윽하게 광야로 달려나가
성곽이 무너지게 얼싸안는 일,
광야 한복판
외로움의 장작불 괄게 지펴놓고
두 영혼의 횃불을 돌리며
내게 강 같은 평화
우리 샘솟는 기쁨 노래하는 거,
오만 오천 에이커에 덮인
비정하고 비정한 눈을 후르륵 녹여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춤추는 밤의 혁명을 위하여
나는 지금 꿈의 봉화를 올리네
내 겉옷과 속옷을 벗어
그대 성곽 하늘 높이 봉화를 올리네

5.

오 저기 그대 외로움이 빠져나오네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사는 넋이란 넋들이 삼지사방에서
아아아아.... 달려나오네
아~아~아~아~ 내가 달려나가네
벌거벗은 외로움이 와지끈 얼싸안고
혁명의 사다리를 올라가네

6.

그대 모르시게
벌거벗은 한 외로움과 다른 외로움이 만나
오만 오천 에이커의 벌판에 짜놓은 들비단을 보는가?
바람결에 들비단 흔들리는 모습 보는가?
쑥부쟁이 구엽초 당귀꽃 쥐똥오줌풀
바랭이 삐비꽃 바늘각시 원추리꽃
가람에 하늘비단 어리는 고요,
부드러운 혁명의 자궁을 보는가?

7.

눈 덮인 광야를 걷고 또 걸어
굳건한 그대 성곽을 바라보며
오만 오천 에이커의 외로움 허물고 나면
저기 어스름처럼 서 있는 죽음의 그림자,
인생의 설한인들 뭐 그리 대수랴
죽음이 다시는 두렵지 않네
부활의 아침이 그닥 멀지 않네

8.

대저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옷을 벗는 일이네
대저 혁명이란 무엇인가, 황야에 들비단 흔들리는 일이네
벌거벗은 두 몸에 하늘비단 굽이치는 모습 바라보는 아침에는
이별이 다시는 무섭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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