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시다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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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00:37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꽃들은 진저리를 친다
출판(발표)연도 : 2003
출판사 : 한국문연
아파트 베란다에 보름달이 찾아왔다
그는 창밖에서 쫓기는 피고처럼 초라하였다
오셨습니까, 낯설고 어색하게 나는 말했다
빌딩의 불빛들을 거슬러 오느라 창백한가
요즘 살기가 옹색한가
수심에 차 있었다
만민의 소원은 아직도 밀물 같지만
빠져나갈 길 없는 약아빠진 세상이라고
얼굴을 돌려 귀를 막고 싶다고
이 꼴 저 꼴 못 볼 것만 눈에 띈다고
보름달 여전히 낮은 목소리
동네 개들아, 모르면 짖지 말거라
그분이시다
그날 우물 속에 빠져 죽자 했을 때
옷자락 건져 올린 그분이시다
나 벌써 몽땅 잊고 살았었는가
염치가 없어서 옴쭉 할 수 없었다
그는 가만가만 내게로 왔다
나를 벗기고 새 장삼을 입혔다
발끝까지 휘감아 온 몸을 헹구었다
그는 창밖에서 쫓기는 피고처럼 초라하였다
오셨습니까, 낯설고 어색하게 나는 말했다
빌딩의 불빛들을 거슬러 오느라 창백한가
요즘 살기가 옹색한가
수심에 차 있었다
만민의 소원은 아직도 밀물 같지만
빠져나갈 길 없는 약아빠진 세상이라고
얼굴을 돌려 귀를 막고 싶다고
이 꼴 저 꼴 못 볼 것만 눈에 띈다고
보름달 여전히 낮은 목소리
동네 개들아, 모르면 짖지 말거라
그분이시다
그날 우물 속에 빠져 죽자 했을 때
옷자락 건져 올린 그분이시다
나 벌써 몽땅 잊고 살았었는가
염치가 없어서 옴쭉 할 수 없었다
그는 가만가만 내게로 왔다
나를 벗기고 새 장삼을 입혔다
발끝까지 휘감아 온 몸을 헹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