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공원 - 정호승
poem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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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6 10:29
저자 : 정호승
시집명 :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아버지 파고다공원에서
'영정 사진 무료 촬영'이라고 써놓고
플래카드 앞에 줄을 서 계신다
금요일만 되면 낡은 카메라 가방을 들고
무료 봉사 하러 나온다는
중년의 한 사진사가
노인들의 영정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노인들의 흐린 햇살 아래 다들 흐리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줄의 후미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사진은 나중에 찍고 콩국수나 먹으로 가시자고 해도
마냥 차례만 기다린다
비둘기가 아버지의 발끝에 와서 땅바닥을 쪼며 노닌다
어디서 연꽃 웃음소리가 들린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에 새겨진 연꽃들이 걸어나와
사진 찍는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람이 영정 사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부처님께 밥 한 그릇은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부처님께 밥 한 그릇은 올라야 하는가
빗방울이 떨어진다
소나기다
나는 아버지와 비를 맞으며 종로 거리를 걷다가
양념통닭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무료로 영정 사진을 찍었다고
이제는 더이상 준비해야 할 일이 없다고
열심히 양념통닭만 잡수신다
'영정 사진 무료 촬영'이라고 써놓고
플래카드 앞에 줄을 서 계신다
금요일만 되면 낡은 카메라 가방을 들고
무료 봉사 하러 나온다는
중년의 한 사진사가
노인들의 영정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노인들의 흐린 햇살 아래 다들 흐리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줄의 후미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사진은 나중에 찍고 콩국수나 먹으로 가시자고 해도
마냥 차례만 기다린다
비둘기가 아버지의 발끝에 와서 땅바닥을 쪼며 노닌다
어디서 연꽃 웃음소리가 들린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에 새겨진 연꽃들이 걸어나와
사진 찍는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람이 영정 사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부처님께 밥 한 그릇은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부처님께 밥 한 그릇은 올라야 하는가
빗방울이 떨어진다
소나기다
나는 아버지와 비를 맞으며 종로 거리를 걷다가
양념통닭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무료로 영정 사진을 찍었다고
이제는 더이상 준비해야 할 일이 없다고
열심히 양념통닭만 잡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