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소녀의 사계가 -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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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년소녀의 사계가 - 고은-

hanwori 0 5960
저자 : 고은-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네 작은 무덤가에 가서 보았네
가장 가까운 아지랑이에
낯선 내 살의 아지랑이가 떨었네
겨우내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 보이는 그 마을의 슬픔
버들옷 뿌리 기르는 시내가 흐르네
어느 날의 봄 비오는 괴롬을 마감하려고
내 봄은 어린 풀밭가에 돌아왔는지
봄에는 네 무덤조차도 새로 있었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 좀 기다리다 가네

여름

네 어릴 때 가서 살아도 아직 그대로인
한 달의 서해 선유도에 건너가고 싶으나
네가 밟은 바닷가의 단조한 고동소리
네 소라 껍질을 모아 담으면
얼마나 기나긴 세월이 그 안에서 나올까
나는 누구의 권유에도 지지않고 섬을 그리워하네
언제나 여름은 어제보다 오늘이고
첫사랑과 슬픔에게 바다는 더 푸르네
옛날의 옷 입은 천사의 외로움을
이제 아주 잊고 건너가지 않겠네 건너가지 않겠네

가을

내가 내리고 떠난 시골역마다
기침 속의 코스모스가 퍼부어 피어 있고
네 눈시울이 하늘 속에서 떨어졌네
밤 깊으면 별들은 새끼를 치네
네 죽음을 쌓은 비인 식탁 위에서
나는 우연한 짧은 편지를 받았네
편지는 하나의 죽음, 하나의 삶
나뭇잎이 스스로 지기보다는 바람에 져야
가을 풀밭 벌레는 화려하게 죽고
이토록 네 지문같은 목소리의 잎이 지고 있네

겨울

너의 뼈가 누운 겨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네 무덤가에 돌아가서
세상을 떠올리며 변한 연필도 막으로 쓰고
더 쓸 것이 없어서 눈물이 흐르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신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아무리 잘 견디었던 어릴때의 추위도
눈이 오면 한동안의 혼이 되어 숨고
그리움은 너에게 대해서 너만한 것이 되어
이제는 네 죽음에서나 나는 잠들어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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