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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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몇 가지

미늘 0 1348
저자 : 강효수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17     출판사 :
내가 버린 몇 가지/강효수


가장 뜨거운 불을 만질 수 있을 때
불을 버렸다
미끈거리거나 끈적거리거나 부드럽거나
뜨겁거나 습한 것들
불의 고리가 끊어져 가벼워졌다
세상이 무모한 짓이라고 말할 때
삭발을 했다
길거나 짧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깊거나 얕거나 뾰족하거나 습한 것들
불의 고리가 사라져 가벼워졌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덮고야 말 나의 습한 것들
너의 것이었던 심장을 버렸다
혼곤한 폐를 버렸다

문자를 버려야겠다
통속적이거나 단편적인 무한 혼돈을
정립되지 않은
그 자주적이지 못한 의식을 버려야겠다
무색무취 무미한 그러나 존재하는
나의 숨결 나의 피 나의 시간으로
내 나머지 공간을 채워야겠다
인간의 언어를 버려야겠다
그 무한 침묵 속에서
우주의 언어로 말해야겠다
다만 시로써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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