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공연 주연배우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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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공연 주연배우의 독백

임백령 0 756
저자 : 임백령     시집명 : 거대한 트리
출판(발표)연도 : 2016.06.30     출판사 :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장기공연 주연배우의 독백

남사당패들이 갖고 다니는 꼭두각시 인형들이다.
나무토막에 너덜거리던 의식이 번쩍 눈을 뜨고
머릿속에 넣어 둔 대사가 몸통에 비쳐 오면
필요한 감정을 소품으로 미리 챙겨 놓는다.
곧이어 우리를 조종하는 대잡이의 소리가
나와 녀석의 목을 타고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우리의 연기는 절정에 달하여
흉내낼 수 없는 증오심을 펼쳐 낸다.
자신의 역할에 스스로가 놀라듯
녀석의 연기에도 물이 올랐다.
화합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 우리
한 장면 끝나고 다음 장면
상대를 어떻게 받아칠지 서로 알고 있다.
감정을 폭발시켜 만끽하는 카타르시스는
관객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다.
그래서 감정 오버를 지향하는 연기
대본에도 없는 행동을 넣기도 한다.
감독은 멀찌감치 관객의 자리에 앉아
제대로 길들인 양 따로 간섭하지 않는다.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는 종점에 이른 극
세상에 퍼진 대본을 이제 수정할 수 없어
녀석을 겨누는 칼날도 거둘 수가 없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수십 년 장기 공연
관객들은 열렬히 박수로 화답한다.
하나의 슬픔이 천 개의 기쁨을 먹여 살리듯
자신의 능력에 저도 모르게 우쭐해지지만
화합의 감동은 관객 마음속에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텅 빈 몸으로 어느 국밥집에 모인다.
남사당패 꾸러미에 팽개쳐진 인형처럼
풀이 죽은 증오심에 밥을 먹이고 술을 붓는다.
바닥에는 그래도 사랑의 찌끼가 쌓여 가는지
함께 온순해져 서로의 마음 헤아리며
연기가 끝나도 우리 행동은 닮아야 하듯이
말을 걸지 않고 침묵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그것은 반복되는 연기에 대한 무한한 경의이다.
공연이 끝나고 짐짝에 보관하는 꼭두각시처럼
우리는 무대 곁을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초점 잃은 눈을 감지 못하고 다소곳이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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