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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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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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퇴고)

김안로 0 2914
저자 : 김안로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14     출판사 :
빈집/김안로

 

늘 다니는 길, 옆 외딴집은
개발 바람에 올라선 8차선 신작로 때문에
분화구처럼 움푹 패어 버려 논마지기와 대밭 사이에
지금은 여남 통의 허름한 벌집 거느리는
삽짝문도 없는 폐가입니다
죽었는지 떠났는지
몇 년 째 벌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빈 마구간 옆으로
산에 길을 내어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밭일하는 주인처럼 측간을 드나들어
언뜻 보기엔 사람 사는 집
웃음도 울음도 외로움도 받아주고, 허락하고, 감싸안던
쭈그린 채 공허한 이 집, 내일 헐린답니다
부득불, 한 영혼이 소천(召天)한다기에 인적 드문 저녁
조심스레 촛불 하나 들고 마지막 조문객으로 들었습니다
오래 격리되어 곰삭은 고독이 낯선 침입자의 숨통을 잡았고
널브러진 공간을 검색하는 촛불도 이내 소름 돋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레처럼 도는 객(客)이
주인이 떠난 물증인 듯한 2010년 4월, 농사달력 앞에 서니
한창 일철을 앞두고 집을 비운 것 같았습니다
달력 위, 둥근 침(針)통으로 붙어 있다가
덕지덕지 거미줄에 포획된 벽시계, 의 시간은 11시 43분
정오인지 자정인지에 올라서지 못해 끙끙거린 시간의 미라가
유리관 속에서 자못 처량해 보이나
숱한 사연들 두고 떠나기 하루 전 풍경치고는
그래도 의연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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