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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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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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

임백령 0 6027
저자 : 이영종     시집명 : 다층 봄호
출판(발표)연도 : 2012년     출판사 : 다층
옹동


옹기 주둥이를 동쪽으로 족제비처럼 내민 곳이 있다
회생인지 희생인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약방이 있는 곳이다
별 뜨지 않아도 아카시아 꽃같이 반짝이던
그릇의 질감들 환하게 펼쳐져 있던 곳이다

가슴이 너무 넓어 서러웠던 사내를 닮은 들판에
그래도 벼꽃이 술래잡기 하던 곳
옹동의 끝은 항아리 같은 것이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산을 넘다 하늘을 거꾸로 걸었다는
애기장사의 전설만 유약처럼 반짝거릴 뿐

옹동의 밤은 옹기 속 같다
입에서 자르르 녹는 마을 이름들
일리 제내 두립 시목 밤마다 모여 궁시렁댄다
뿌리만 즐겁다면 어디 꽃 필 곳 없겄어
최경선을 본들 머허겄능가
이 유구하고 삼삼한 들을 쏘다녔으면 됐지
글지 이잉?

옹동은
뭐 이런 곳이다

 


 
시작 에피소드

햇볕 환한 날, 옹동으로 들어선다.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곳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 이는 몇 채의 오래된 집과 누런 풀들, 그리고 간혹 화답을 던지는 개울물 소리 뿐이다. 몸과 마음에 조금이라도 금빛을 두르고 있는 사람들은 떠날 수 있다면 떠났다.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를 기억하던 나무들도 나이가 들어 자주 말들이 흔들린다. 박재삼의 시 “추억에서”처럼 버려진 옹기들은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인다. 약방 간판은 묵어 ‘희생’인지 ‘회생’인지 아무래도 좋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벼꽃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을 생각한다. 그들은 어느 곳에 숨어 따스한 알을 품고 있을까. 사람들이 많아 사람이 귀하지 않은 곳에서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이슬을 덮고 자는 사람들이 불꽃으로 피어나고, 경쟁의 고속철도에 몸을 실어 어지러운 마음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른 채 살아가는 시절이다.

우리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던져진 곳이 어디든 우리는 일어서려 한다. 아름다운 마을 이름을 지었던 사람들이 그러했고, 떠나지 못하고 남아 유구한 들을 떠도는 사람들이 그러하며, 죽을 때까지 돌아갈 곳을 찾는 대처의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뿌리만 즐겁다면 어디 꽃 필 곳 없겠는가.


[출처] 옹동-다층 2012년 봄호 통권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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