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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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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이태건     날짜 : 17-12-07 14:50     조회 : 2923    
    · : 예초기
    · 저자(시인) : 이태건
    · 시집명 : 광주문학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17(가을호)
    · 출판사명 : 도서출판 한림
예초기

예초기는 날이 적을수록 강하다.
명아주 튼튼한 줄기라도 처내려면
40개 원형날보다 2도날이 제격이다.
명쾌하게 잘려나가는 잡초 밑둥들에 집중하면서
주변을 울리는 엔진 굉음에 둘러싸이면
세상엔 다만 물리칠 놈들만 보이는 법이다.
낫질할 때는 풀밭에 개구리라도 다치는지
어디만큼 콩줄기는 서 있는지
한번쯤 허리 들어 살피기도 하는데
예초기를 돌릴라치면 오직
베어낼 놈들만 보인다. 아니
심어둔 사과나무마저 적들로 보이기도 한다.
낫으로 잘못 찍은 무화과는
낫을 내려놓고 얼른 갠 황토를 발라주었는데
예초기에 다친 사과줄기는
돌아가는 톱날을 내려놓을 수 없어 지나치기로 한다.
예초기를 밀며 명쾌하게 전진할 때엔
까짓 아픈 마음이 대수랴 싶다.
대전면 평장리 174번지 이 좁은 지번에서
예초기 하나 들고, 그,들,처럼,
제왕의 기분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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