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기 - 한신문화사
임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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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4 17:30
저자 : 임영준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1981
출판사 : 한신문화사. 상실기. 제3시집
상실기
어느 날 저녁
가랑비 내린 골목에
재난이 숨겨져 있었다
들에서 자라는 풀잎들이
혹독한 바람에
물기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 음침하고
축축한 그 날 저녁은
호흡을 거부하던
우리 모두에게
차라리
안온한 한낮이었다
종일 손질하고
닦아두었던 육혈포에
통한의 일발을 장전하고
죽음도 외로움도 모르면서
우리는 누구에겐가
숨겨놓은 재난을 떠맡겼다
눈짓 한번 없이
잿빛 허공이 갈라지고
도도하게 버티고 섰던
우리의 교만은
한 줌의 뼈 부스러기로
제단에 뿌려졌다
종국엔 잃어버린 것뿐
그 저녁 무렵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싸늘한 바람을 헤젓고
하루하루 헤아리면서
한신문화사.1981
어느 날 저녁
가랑비 내린 골목에
재난이 숨겨져 있었다
들에서 자라는 풀잎들이
혹독한 바람에
물기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 음침하고
축축한 그 날 저녁은
호흡을 거부하던
우리 모두에게
차라리
안온한 한낮이었다
종일 손질하고
닦아두었던 육혈포에
통한의 일발을 장전하고
죽음도 외로움도 모르면서
우리는 누구에겐가
숨겨놓은 재난을 떠맡겼다
눈짓 한번 없이
잿빛 허공이 갈라지고
도도하게 버티고 섰던
우리의 교만은
한 줌의 뼈 부스러기로
제단에 뿌려졌다
종국엔 잃어버린 것뿐
그 저녁 무렵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싸늘한 바람을 헤젓고
하루하루 헤아리면서
한신문화사.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