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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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기 때문에

하늘호수 0 627
저자 : 성백군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사람이기 때문에 / 성백군


여러 화분에 밀리고도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새파랗게 돋아나는 알로에
날마다 사지 한쪽씩 찢기고도
기꺼워할 것으로 생각하는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알로에가 우리 집에 온 지가
30년이 넘었네요. 처음 10년은 교회에서
심방 올 때 선물로 가져온 것이라서 버리지 못했고           
다음 20년은,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선뜻 버릴 수 없듯이 저것도 산 것이라서
그동안 함께한 시간을 무시할 수 없도록 정이 들어서 
버릴 수 없었다면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평생을 비료 한 번 준 적 없어요
버리지 않았을 뿐이지 더러 몇 개월씩 물도 안 줘서
비쩍 마르고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그것도 은혜라고 생각했는지 물 한 모금이면
파릇파릇 생기가 붙네요
잎의, 뾰족한 창끝같이 보이는 것에
개으른 내 삶, 무심한 마음이 찔림을 당한 것도,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제는 나도 많이 늙었나 봅니다
평생을 로션 한 번 바른 적 없는데
아내의 권유에 마지못해 알로에즙을 얼굴에 발랐더니
죽은 세포가 촉촉이 살아나네요
살갗이 깨끗해지고 피부가 반들반들 윤이 납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몸에 미안하고
무심했던 내 사람들을 저절로 돌아보게 되는 것은 아직도 내가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저렇게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생각이나 행동이 오리무중이지만
그것도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내 얼굴에 묻은 세월의 때를 씻겨 주듯이
내 마음의 허물도 지워 달라고 알로에에 생떼를 쓰는 나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무엇, 해준 일도 없으면서
알로에의 멀쩡한 사지 한쪽 떼어 내
그동안 길러준 은혜를 갚으라고
얼굴에 쓱 문지르는 것도 내가 사람이기 때문이라면
사람 참, 골치 아픕니다

    751 - 041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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