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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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가계도

정진용 0 379
저자 : 정진용     시집명 : 여전히 안녕하신지요?
출판(발표)연도 : 2017     출판사 : 문학의 전당
거룩한 가계도 / 정진용


1

孺迎    孺迎    孺迎
人日    人日    孺日
寧鄭    慶鄭    秋鄭
越公    州公    溪公
辛尙    孫雲    秋原
氏源    氏華    氏澤
 之        之      之
 墓        墓      墓

아이야 네 조상이시다. 여기 이분들 모두
바다였단다. 농자천하지대본야 하늘처럼 믿고
오체투지로 들판 치댄 바다였단다.
욜랑욜랑 미세기처럼 들판 가꾸면서
보릿고개 주린 배는 조팝나무 향으로 얼렀단다.
모내느라 끊어질 것 같은 허린 이팝나무 꽃술로 달랬단다.
자벌레 몸짓으로 제자리 가꿨단다. 네가 이름 몰라도
때맞춰 몸 여는 여뀌, 고마리 더불어
한자리 지켰단다. 네 눈물 없어도
알아서 떠나는 민들레, 씀바귀 따라
여기 이르렀단다. 파도에 닳은 몸은
흙 속 깊이 눕혀놓고 물기 마른 넋은
말똥가리처럼 봉긋 무덤 위에 앉아
이내 감도는 마을 굽어본단다.


2

동해에 선다. 동해는 아무 말 없다.
함묵 동해에서 누구는 선비를 만난다는데
나는 뼛속 푸른 농사꾼 아버질 뵙는다.
쉴 짬 없이 뒤척이는 동해 물결 뒤져보면
어린 나를 덮치던 당신의 울컥 너울이
내 마흔 굽이에서 솟구쳐 그때 나 같은 애들 휘덮고
뜻대로 살지 못한 부아를 순진한테 끼얹는 꼴이
집안 내림 같아 머리 쭈뼛한데
불콰한 목청으로 떡을할 세상, 육시랄 놈이라며
세상 꾸짖던 당신 얼굴이 요즘의 내 꼴 같아
그때 당신처럼 술잔에 빠져 당신 어스름에 취할 때
파도가 고막 다독인다. 핏줄 앞에선
나이도 속절없지만 참아야 한다. 그래도
할 만큼은 해야 한다.
해야 한다······.


3

해질 녘 서해에서
물 썬 갯벌을 끌듯이 쓸듯이 뒤지는
울멍줄멍 엄마들 본다. 한때 비옥했지만
지금은 숭숭 바람인 엄마를 생각한다.
당신의 엄마가 그랬듯
핏줄 지겨운 지아비 성화 밀물로 덮어주며
주름 잦아지는 당신 바다에 젖는다.
속 다 보이는 노을 살림에도 자식새끼 챙겨주며
날마다 까치 울음 덧칠하는 당신의 붓질 생각하면
세한도 여백 닮은 당신의 머리 아뜩한데
솨 솨 당신의 천식 기침 밀려와
잘살아라, 애 엄마한테 잘해라, 네가
가장 아껴줘야 할 사람이란다 가슴 비질하고
솨 솨 물러가며 원주 이씨처럼
서해처럼 사는 밀양 박씨 다독인다.
네게 이해해야 한다. 남자란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는 애란다.


4

나의 가계는 겸허하다.
족보 들여다보면 대대로 키 낮은 파도였다.
해일로 솟구친 망둥이 선조도 있었지만
거의 다 바람 타고 바다 다녀갔다.
다녀가면서 바다처럼 살라고
내 몸에 간간한 소금기 남겼는데
나는 한 방울 눈물조차 사람 틈에 풀어놓지 못하고
지느러미 없이 비늘 없이 이빨 없이 뭍 섬긴다.
동해 얼도 없이 서해 아량도 없이
홋홋 섬으로 열도 같은 아이 기른다.
오른쪽 쳐다보며 도다리처럼 눈알 돌아갈 때마다
세상 정의 곱씹는다. 왼 것 바라보며
넙치로 진화할 때마다 인간 평등 곱새긴다.
그 결에 다른 무늬 돋워주고
그만큼 짙은 그늘을 술로 풀친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으라는 세상의 법 지킨다.


5

애면글면
하루치의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밤
애비는 미안하다. 고등어한테 쫓기는 멸치 떼처럼
안방으로 몰려와 얼기설기 꿈 엮는
너희 머리맡에서 애비는 어깨 줄어든다.
똑 애비의 어릴 적 모습으로 명치 휘젓는 것들아.
문어에미 날로 먹고 뚝지애비 통째 먹고
바다 되어라. 하늘로 팔뚝질 않고
땅끝에 침 뱉지 않는 바다 되어라. 이게
항렬만 높은 영일 정씨 지손 집안이
새로 세워야 할 가풍이란다. 낮은 품계
작은 녹봉으로 육지 받드는 애비의 유산이란다. 자식은
부모 그림자 안에서만 노는 시절에
애비가 물려줄 오직 하나의 가보란다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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