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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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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정진용 0 410
저자 : 정진용     시집명 : 여전히 안녕하신지요?
출판(발표)연도 : 2017     출판사 : 문학의 전당
야사 / 정진용


가대기꾼 볼 때 눈알 쑤신다. 관군의 바늘에
한쪽 눈 앗긴 나는 만리장성 쌓다 돌에 깔렸다.
두고 온 고향의 논처럼 쩍쩍 갈라진 등뼈와 함께
불꽃 퍼런 눈알을 성벽 속에 맡겼다. 지금도
서북풍이 뒷등의 채찍 자국 소환하면
눈부터 욱신거린다. 등짐 겨운 사람 보는 날엔
이미 흙이 된 망막에 눈물 고인다.

시위대 함성 듣는 날엔 귓속의 달팽이 발작한다.
학정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차라리 죽여 달라 할 때
나는 펄펄 분노 이끌고 관아로 달려갔다. 왕과 그 신하는
나한테 역모의 칼 씌웠다. 으스러진 무릎을
저잣가리 가운데 꿇렸다. 내 귀에 화살 꿰었다. 우 우
시위 소리 들을 때마다 장대 끝에 걸렸던 환청이
겨울밤 문풍지로 운다. 우 우······.

훨훨 불길로 목욕하는 고깃덩이에 후춧가루 뿌릴 때
나는 코 가렵다. 왜구한테 코를 내어주고라도
연명했던 나는 말라카 섬에서 채찍 맞으며
몽둥이 맞으며 후추 거뒀다. 이즈음
아프리카 아이의 흑요석 눈물로 만든 커피 향에
젖다 보면 사레들 때도 있어 코뚜레에 꿰여
굴비처럼 엮여 대서양 건너던 때의 콧구멍이
푹 삭은 홍어처럼 아리다.

내 간악한 혓바닥이 포해(脯醢) 달고 살던 때 있었다.
나는 도적의 수괴로 만삭의 양을 산 채로 삶아
태 속의 보들보들 살점 곁들여 배갈 즐겼다 처녀를
겁탈하고 그 상육(想肉)의 질감을 곱씹던 날이
내 미각의 화룡점정 시대였다. 지금도 탱글탱글
수육을 만나거나 쫀득쫀득 회를 맞는 날엔 가끔씩
백성 아니었던 시절 도척의 날이 그립다.

지문이 닳는다. 파충류를 배워
온몸으로 시장 골목을 쓸며
뭇사람 눈길로 생을 깁는 사람 볼 때
내 지문이 닳는다. 나는 돌을 갈아 거울 만들며
청동의 시절 보냈다. 바늘 끝도 용납 않는 수로 만들며
손금 바쳤다. 칠성판 같은 모루 위에서
여인네 사치 다듬는 세공사 생각하면
손끝에서 오글오글 벌레알 깨어난다.

내 백성의 전생은 헐하다. 동굴 속 가부좌로
백성을 벗어나려 했던 때도 있었으나 미라가 되었을 뿐이다.
그 결에 애써 불린 몸뚱일 다른 목숨한테 바치지 못한 것이
아직도 찜찜하다. 내 백성의 신역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번 생은 마음마저 저렴하다. 물이 되어
낮은 곳 지키면서도 제 팔자 제 멋에 취해
사흘돌이로 빌빌댄다. 내 숙취의 증거 인멸하는
화장실의 성녀 알현하는 날엔 똥구멍 화끈거린다.
그렇게 민(民)을 겪고도 민을 끝내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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