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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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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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한승수 0 395
저자 : 한승수     시집명 : 손톱을 깎으며
출판(발표)연도 : 2018     출판사 : 하움출판사
깡통 / 한승수


여름 밤 술자리의 마무리는
편의점 앞 테이블이 제격이렷다
수입 맥주가 골라서 네 개 만원
칼스버그 하이네켄 칭따오 삿뽀로
국적과 피부 빛이 다른
파트너 하나씩을 골라 잡는다

인연이란 게 다 그렇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달라도
어느 편의점 냉장고 안에서 우연히 만나
너희들도 우리처럼 동기 동창이 되었구나

뚜껑을 열고 혀를 감도는
내 파트너와의 입맞춤을 음미하며
다른 것들은 맛이 어떻게 다를까
속물적인 본능이 슬며시 발동한다

취한 술은 가슴에 스며
향기로운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빛 바랜 기억의 퍼즐 하나씩 맞추어 가다가
1차원의 대화가 4차원이 될 쯤이면
우리들도 뚜껑이 열린다

뚜껑이 열린 것들은
모두 깡통이 된다

비틀대며 굴러다니다가
누군가의 발길에 차여
멀리 날아가 버려도 좋을 것 같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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