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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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7 07:01
저자 : 나희덕
시집명 : 뿌리에게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아버지의 등
나희덕
1
밤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업었다 인적 없는 길로하여 간호원의 집에서 주사를 맞히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우릴 보며 웃었다
금방 하늘에라도 오를 것 같던 어머니가 그의 등 위에서 살아나고 있다고, 웃었다
숨었던 꽃이 하얗게 덩굴 위로 피어나고 얼었던 못물이 풀려 달빛에 반짝일 무렵 솔밭에서 바람은 불어와 살아 있는 내를 실어 온다며, 그는 웃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야곱의 이야기다
환도뼈가 쪼개져도 놓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닥다리에 매달려 있는
새벽이 되자 나무로 자라 있는
그 등이 나뭇결처럼 단단해진
바위처럼 살아 있고
노래처럼 흐르는
2
그 짧은, 눈부신 밤길을
빛 하나도 없이 나는 왜 달리는가
들쳐업고 달리다보면
나의 등은
문득 거친 벼랑인 것을
거기에 날개 단 풀꽃 하나가
바람에 지쳐 우는데,
아무도 알 수 없다네
나의 등과 당신의 가슴이 만나는
수평선, 그 위로 떠오르는 별들을
별이 쏟아져내릴수록
싸움은 나의 일이 되고,
오늘도 당신을 들래들래 업고서
다리를 건너네
저만치 하얀 꽃들이 눈부신 들을
빛 하나도 없이
바람 한점 없이
다리를 건너네
나희덕
1
밤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업었다 인적 없는 길로하여 간호원의 집에서 주사를 맞히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우릴 보며 웃었다
금방 하늘에라도 오를 것 같던 어머니가 그의 등 위에서 살아나고 있다고, 웃었다
숨었던 꽃이 하얗게 덩굴 위로 피어나고 얼었던 못물이 풀려 달빛에 반짝일 무렵 솔밭에서 바람은 불어와 살아 있는 내를 실어 온다며, 그는 웃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야곱의 이야기다
환도뼈가 쪼개져도 놓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닥다리에 매달려 있는
새벽이 되자 나무로 자라 있는
그 등이 나뭇결처럼 단단해진
바위처럼 살아 있고
노래처럼 흐르는
2
그 짧은, 눈부신 밤길을
빛 하나도 없이 나는 왜 달리는가
들쳐업고 달리다보면
나의 등은
문득 거친 벼랑인 것을
거기에 날개 단 풀꽃 하나가
바람에 지쳐 우는데,
아무도 알 수 없다네
나의 등과 당신의 가슴이 만나는
수평선, 그 위로 떠오르는 별들을
별이 쏟아져내릴수록
싸움은 나의 일이 되고,
오늘도 당신을 들래들래 업고서
다리를 건너네
저만치 하얀 꽃들이 눈부신 들을
빛 하나도 없이
바람 한점 없이
다리를 건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