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을 들고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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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19:22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온유에게
출판(발표)연도 : 2014
출판사 : 시와시학
식판을 들고/이향아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릴 때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진실로 하찮은 나를 만난다
더구나 그것이 돈을 받지 않는 공짜 밥일 때
소비에트 수용소
이반 데니소비치를 생각한다
그가 몰래 감추어둔 200g의 빵을
천하에 부러울 것 없다던
그의 행복을 생각한다
거기 대면 황제도 부럽지 않건만
왜 이렇게 마뜩치 않은가
겨우 밥을 먹기 위하여 서 있는 육신
밥이나 먹으려고 목을 빼는 정신
왜 이렇게 공복감은 때마다 와서
빈 그릇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들은
너나없이 수용소의 무기수일 뿐
출옥할 날짜를 안들 무슨 소용 있으랴
다만 온순하게 복역 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누웠든 앉았든 줄을 섰든 어쨌든
사실 나는 언제나 식판을 들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린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릴 때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진실로 하찮은 나를 만난다
더구나 그것이 돈을 받지 않는 공짜 밥일 때
소비에트 수용소
이반 데니소비치를 생각한다
그가 몰래 감추어둔 200g의 빵을
천하에 부러울 것 없다던
그의 행복을 생각한다
거기 대면 황제도 부럽지 않건만
왜 이렇게 마뜩치 않은가
겨우 밥을 먹기 위하여 서 있는 육신
밥이나 먹으려고 목을 빼는 정신
왜 이렇게 공복감은 때마다 와서
빈 그릇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들은
너나없이 수용소의 무기수일 뿐
출옥할 날짜를 안들 무슨 소용 있으랴
다만 온순하게 복역 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누웠든 앉았든 줄을 섰든 어쨌든
사실 나는 언제나 식판을 들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