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시 모음 -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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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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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시 모음 -김용화

김용화 0 11521
저자 : 김용화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17     출판사 :
가장의 밤

 
잠든 아내 이불 끌어다
미운 발
덮어주는 일

딸 자는 방 살짝 들어가
지폐 한 장
찔러주는 일

아들놈 우산 갖다주고
책가방
들어주는 일

창밖 밤비 소리 들으며
쓴술
삼키는 일


 꼬마 시인


엄마- 달님이가 자꾸 나를 쳐다봐
괜찮아, 우리 애기 예뻐서 그래

엄마- 달님이가 나를 따라와
괜찮아, 우리 애기 함께 놀자고 그래

엄마- 달님이가 물에 빠지려고 해
울지 마, 달님이는 옷이 젖지 않아

세 살짜리 꼬마가
엄마 등에 업혀 소래포구를 건너간다


그 시절

 
종점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닿는 변두리의 변두리
내 새끼들 잠들어 있는 연탄 냄새 다정한 집에는
방안 가득 하얀 기저귀가 마르고
젖살 포동한 갓난애기 배냇짓하며 나비잠을 잤다
날개옷 잃어버린 가련한 천사는
전설 속에 갇혀
날아가지 못하고
밤 되면 수지웁게 하늘 같은 지아비를 맞아들였다

 
세월 속에서


눈이 와서 마을이 박속처럼 화안한 날
고향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다
80을 바라보는 엄마가 해 준 흰 쌀밥 먹는다
90을 코앞에 둔 아버지가
50이 넘은 아들 밥 먹는 모습 지켜보다
귀밑에 흰 머리 하나를 뽑아 준다
눈꽃이 전설처럼 피어나는 동화 속 마을에서


가족사진

 
계급장도 없는 훈병 모자 눌러쓴
삼십 중반 아버지가
세 살짜리 고추를 안고
박꽃처럼 환하다

할머니랑 엄마랑
광시, 청양, 부여 백마강을 배 타고 건너 꼬박
이틀 만에 당도한 논산훈련소

스물다섯 분꽃 같은 엄마는
내외를 하는지
다소곳이 고갤 숙인 채
새촘한 표정,
무슨 생각 저리도 골똘한 것일까

사진 밖에 서 있는
할머니 환한 얼굴도, 내 눈에는 환하다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그 여름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시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짚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아름다운 일요일

 
일요일이면 아내는 교회로 가고 난
늦잠을 잔다
잠을 깨도 그냥 누워서 생각을 한다
하늘나라에서 천사 옷 걸친 아내는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지금쯤 믿음 없는 남편 위해
성경책 위에 얼굴을 묻고 있을 시간,
싸늘하게 식은 찬밥 앞에서
난 또 한 덩이 찬밥이 된다
아름다운 일요일, 그래 난 참 행복해-


장길


빚봉수서고 팔려가는 소
자운영 꽃 피는 논둑길 건너갈 때
울아버지 홧병,
쇠뿔 같은 낮달이 타고 있다
한내 장길


노파와 개


노파가 죽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흰둥이
혼자

주검 곁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와 거위

 
햇빛 재글거리는 한낮
인적 끊긴
시골길

유모차를 미는
할머니
굽은 등을

거위 한 마리
뒤뚱대며
따라가고 있다

 
고욤 꽃 아래서

 
노파와 개가 마주 앉았다

복실아
……

심심하지?
……

그래, 산다는 게
그런 거란다
……

고욤 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딸에게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선녀가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


딸 시집보내고

 
신발장에 벗어놓은 네 조그만 구두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베란다에 적막하게 걸려 있던 이쁜
네 팬티들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하얀 눈 내린다
먼지처럼
허공을 떠돌다
조금씩 내려서 쌓인다

늙은 아내, 빈 둥지를
지키고 앉아
시집간 딸 걱정할 만큼만 눈이 내린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
세상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
손수레에 연탄재를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른다
꼭두새벽 어둠을 딛고 일어나
국방색 작업복에 노란 조끼를 입고
통장 아저씨를 만나도
반장 아줌마를 만나도
허리 굽혀 먼저 인사를 하고
이 세상 구석구석
못쓰게 된 물건들을 주워 모아
세상 밖으로 끌어다 버린다
나를 키워
힘센 사람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가 끌고 가는 높다란 산 위에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아버지의 짐 자전거


한평생 버겁던 짐 다 내려놓고
타이어도 튜브도
안장도 짐받이도 떨어져 나간 채

고향 집 앵매기 집 짓는 헛간
구석에 처박혀

예산장- 홍성장- 삽다리장-
새벽안개 가르며 씽씽
내달리던
푸른 시절, 푸른 날들 추억하다가

장꽝에
감꽃 구르는 소리…

가슴 허무는
아버지의 짐 자전거

 
마중

 
비가 오는 날마다
할머니는
삼거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세시차가 있고
다음은
다섯 시 반이었다

헌 우산은 쓰고
새 우산은 접고
세시차에 안 오면 다음 차가 올 때까지

비에 젖어,
해오라기처럼 서 계시었다

 
아내


눈길만 마주치고 살자며
첫날밤
잠도 안 자고
창밖에 별만 쳐다보던 그 여자

아들 군대 보내 놓고
오늘은
밥도 안 하며
먼 산만 바라보는 저 여자


모과

 
못생긴 모과 하나

방안 가득
눈물 같은 향을 내더니
썩어가며 더욱 깊어지누나

암꽃처럼 피어나는
반점

그대,
누워서도
성한 우리를 걱정하시더니

 
귀가

 
인제는 가리, 은하 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 들어가면
우물가에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화안한 그 집,
흰 무명 저고리 어머니가
아랫목에 더운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박이는 곳으로


아버지

 
지난겨울 온 세상이 하얀 눈 속에 묻힌 날,
아버지는 호올로 세상을 떠났다
대학병원, 요양병원 수차례 전전하다
끝끝내 고향 집에 내려가 보지 못하고
요양병원 집중치료실에서
거인처럼, 차력사처럼, 온몸에 바늘을 꼽고
고무호스 주렁주렁 늘어뜨린 채
이승의 마지막 끈을 놓아 버렸다
생전 아버지는 개미 한 마리 밟지 않으려고
고갤 숙이고 땅만 보고 다녔다
짐 자전거를 많이 끌어
왼쪽 어깨는 주저앉고 오른쪽은 솟아올랐다
영하 18도 살뚱맞은 추위 속에
하늘은 연사흘째 사카린 같은 눈을 뿌렸다
적막하디적막한 새벽 한 시-
비보를 받고 달려간 요양병원 집중치료실
하얀 칸막이가 쳐진 시트 위에 반듯이 누워
아버지는 단 한마디 말이 없고
고향에서 올라온 홍시 하나, 머리맡에
빨간 조등을 밝히고
아버지의 마지막 밤을 꺼질 듯 비춰주고 있었다

 
청개구리의 노래


터벅터벅 바짓가랑이 적시며 울 어매 마른 젖 파러 갈꺼나
구시렁구시렁 밤비는 저냥 내려 쌓는데
하늘 간 울 할매 명 치마 땟국 냄새나 맡으러 갈꺼나
구죽죽 구죽죽이
퍼붓는 밤비야


할미꽃
 
 
돌아가시기
전날 밤

밤새
큰손자 이름 부르셨단다
 
할머니-


지후가 오는 날


지후가 온다, 강남제비 앞장세우고
지후가 돌아온다
꼭두서니 빛으로 동트는 새벽
창밖 미루나무 참새 떼 모여 앉아
햇살을 굴리며 쪼으며
재잘거린다, 조잘거린다, 쪼잘거린다
백일도 갓 지난 것이
살에서 오이풀 내 나는 어린것이
경상도 영천 외가에 가 있다 
일 년 만에 돌아오는 날이다
꼬까옷도 사놓고 방 청소도 해 놓고
얼굴에 뭔가 찍어 발라도 보며
어린 손님 맞이할 준비로
집안이 온통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다 
희고 자그만 깡충거미 한 마리
천정에서 사뿐- 
탁자 위 나비란 잎새에 내려앉는다


혜준이
                                     

내 딸의 젖을 물고 곤하게 잠든 아가야
녹두 알 같은 아가야
지구에서 먼먼 안드로메다 성운 어디쯤
세 필 조랑말이 이끄는
작은 별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아가야

메밀대처럼 여린 늬 에밀 지켜주려고
길동무 하나 없이
멀고 험한 길 찾아오느라 참 고생도 많이 했구나

그렇다고, 그렇다고,
잠에서 막 깨어나 눈물 글썽이며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천상의 아가들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듯

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말
옹알거리며
진땀을 빼고 있는
요 놈-
밤낮 즤 에밀 파먹어 통통 살이 올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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