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시 모음 -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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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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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시 모음 -김용화

김용화 0 1572
저자 : 김용화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17     출판사 :
망종 무렵


할아버지 소와 함께 비탈밭을
가신다
송아지는 심심하다고
어미 그림자 졸졸 따라다닌다

개옻나무 아래 잠시
할아버지 눈 붙이시는 동안
커다란 두 눈 슴벅이며
어미는 연하여 송아지 목덜미를 핥아 준다

초아흐레 흐린 낮달이
가새뽕나무에 걸리는 한나절,
쑥꾹새 울음 따라
빨간 오디가 먹빛으로 익는다


불두화 피는 밤
- 입하立夏


워낭 소리 무심히
빈 뜰을
채우는 밤

몽실몽실
달 아래
불두화 벙그는 소리

외양간 소가
귀 열고
가만-

눈 감으시다


장길


빚봉수서고 팔려가는 소
자운영 꽃 피는 논둑길 건너갈 때
울아버지 홧병,
쇠뿔 같은 낮달이 타고 있다
한내 장길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 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소와 농부


농부가 밭 갈다 산그늘에 잠들면
파리 쫓으며
주인의 잠든 모습 지켜보다가

워낭 소리 잘그랑거리며
콩 포기 하나 다치지 않고
먼 산길 들길 혼자 걸어서

풀꽃 왕관 머리에 쓰고 집을 찾아 들어가
송아지에게 젖 물린 채
든든하게 배를 채운 다음

네 발을 모두고 지그시 눈 감는다


파장罷場


쇠전
한복판에
옹이진 말뚝

머리를 쳐들고
서 있다

숨죽이는 풀벌레들 쇠똥 위에 코를 박고
긴 수염을
세우는


캄캄한 어둠 속에
머리를 쳐들고
서 있다


끌려가는 소


끌려만 가고 있네, 빗소리 한사코
수군대는 논둑길
먼 하늘에 두 눈알 박고
굳은 입술 다문 채 끌려만 가네

찬비 맞는 봄풀들 검은 머리 흔들며 우네
동구 밖에 장승
비 뿌리는 하늘만 쳐다보네

주막거리 지나 우두봉(牛頭峰)
바라보며
피눈물 흩뿌려 거친 바람 잠재우고
돌아보고 돌아봐도
하얀 꽃잎만 흩날리는데

끌려만 가고 있네,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길
독새풀 파릇이 돋아나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으로

곧은 뿔 잘라지겄네, 움머-
넓은 발 피집 잡히겄네, 움머-
두 눈 크게 뜨고 쓰러지겄네, 움머 움머-


소의 유언
-2010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이 땅의
11만 마리 소들을 진혼하며


저는 다 알아요, 싸락눈 싸락싸락 루핑 지붕을
때려 쌓는 소한의 아침,
주인님 지극정성으로 마련해 주신
검정콩 누렁콩 듬뿍 넣은 특별식 받아먹으며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 길이 슬퍼 눈물 펑펑 쏟은 게 아니오라
주인님 넘치는 사랑에 그만
눈물샘이 터져 버리고 말았던 거였어요
다 알아요, 집 나올 때 왜
주인님 다수운 손길이 제 언 잔등 위에서 오오래 떨리고 있었는지
고욤나무 쳐다보며 한사코 줄담배만 태우셨는지

그날, 미시(未時) 조금 지나 날이 개고
수리봉 산그림자
사부작사부작 눈 쌓인 밭고랑을 타고 내려올 무렵
주인님 저와의 긴긴 세월,
추억의 구기자 밭 개옻나무 아래서
알 수 없는 주사 한 대를 맞고 개골창에
꼬꾸라져 나뒹굴다
포클레인 삽날에 찍혀 땅속 깊이깊이 묻히고 말았어요

뼈는 묻고 살은 썩어서 꽃 피는 봄날이 오면
이 땅을 푸르게 할 흙이 되어드릴게요
제 무덤 위에도 밤마다 푸른 별 돋고 철 따라
이름 모를 작은 꽃들 피어나겠지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눈물 거두시고 안녕히 안녕히 계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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