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머니가 다녀가시면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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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3 14:55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어머니 큰 산
출판(발표)연도 : 2012
출판사 : 시문학사
가끔 어머니가 다녀가시면/이향아
새벽에 잠을 깼다가 다시 눈을 붙였는데
어머니가 설핏 보였다
연분홍 레이스의 블라우스에
꽃무늬가 잔잔한 상아빛 주름치마를 입은
어머니는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의 오른쪽은 벽이고 왼쪽은 커다란 창이었다
창에서 들어오는 빛살에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갈꽃처럼 보였다
걸음걸이가 뒤뚱뒤뚱하였다
어머니는 한 손에는 당신의 머리카락보다 더 뽀얀 걸레가 들려 있었다
한 시도 쉬지 않는 어머니
어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에는 마루가 번쩍거리고 유리창이 깨질 듯 들이비치곤 했다
아침밥을 하러 나왔을 때 나는 장승처럼 서서 어리벙벙 둘러보았다
엊저녁 늦게 돌아와 엉망인 부엌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릇들은 제빛을 찾고 도마며 냄비며 차곡차곡 나란하였다
'너는 사내처럼 늘 바삐 버둥대느라-'
시원찮은 딸을 잊지 못하고 가끔 가끔 어머니가 다녀간다
우렁이각시처럼 감쪽같이 다 잠든 한밤이나 새벽이면 둘러보러 온다.
새벽에 잠을 깼다가 다시 눈을 붙였는데
어머니가 설핏 보였다
연분홍 레이스의 블라우스에
꽃무늬가 잔잔한 상아빛 주름치마를 입은
어머니는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의 오른쪽은 벽이고 왼쪽은 커다란 창이었다
창에서 들어오는 빛살에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갈꽃처럼 보였다
걸음걸이가 뒤뚱뒤뚱하였다
어머니는 한 손에는 당신의 머리카락보다 더 뽀얀 걸레가 들려 있었다
한 시도 쉬지 않는 어머니
어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에는 마루가 번쩍거리고 유리창이 깨질 듯 들이비치곤 했다
아침밥을 하러 나왔을 때 나는 장승처럼 서서 어리벙벙 둘러보았다
엊저녁 늦게 돌아와 엉망인 부엌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릇들은 제빛을 찾고 도마며 냄비며 차곡차곡 나란하였다
'너는 사내처럼 늘 바삐 버둥대느라-'
시원찮은 딸을 잊지 못하고 가끔 가끔 어머니가 다녀간다
우렁이각시처럼 감쪽같이 다 잠든 한밤이나 새벽이면 둘러보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