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캐다 (2019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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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캐다 (2019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

송병호 0 504
저자 : 송병호     시집명 : 궁핍의자유, 환유의법칙
출판(발표)연도 : 2015, 2019     출판사 : 문학의전당, 시산맥
*** 言語를 캐다


차용하거나 임대한 어휘는 주목받지 못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를 예민한 촉각을 곧추세우고
비슷한 모양에 덧대고 보수해 써보지만
대부분 도로다 따로따로 읽힌 오독 때문이다
눈썹에 내려앉은 달빛만으로도 시가 되고
별 하나로도 애달픈 문양을 새겼던 연서나
음유를 멋 삼던 선비의 붓끝 낭만은
종간된 잡지 표지 모델처럼 잊힌 지 오래
같으나 같지 않는 미로의 관을 순환하는
통로에 서서 때때로 얼룩의 터널을 지나야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객석의 과묵한 폭로가
대나무 소리구멍을 뚫어 심장을 꺼내고
타성他聲을 연기하라고 주문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를 오판을 안고 있듯이
점자만 따라가다 짚어보지도 못하고 자기를 버린
청상靑孀의 사랑고백이라고나 할까
황무지를 일궈 문장을 캐는 기인이라고나 할까
그늘을 쫓아가는 햇볕은 그대로인데,
영역을 넓히는 볕의 습관처럼 서걱거리는 혀 같아서
잇속을 행굴 때마다 생긴 간격은 더 벌어진다

종종 지갑 속에 숨긴 문장을 들킨 적이 있다
누구를 보고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신의 말씀을 접목한 비유가 아니고서야
굳이 난해한 질문은 오답을 종용한다
늦여름 태풍에 유산된 낙과의 의도와는 달리
재해석 된 사생아,

마침내 비수에 꽂인 숨통을 퇴고한다
갑자기 순기능을 잃어버린 멍멍한 말 줄임
골똘히 암호문 짝짓기

조금씩 멀어지는 마침표를 읽는다



(2019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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