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카락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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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20:35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어머니 큰 산
출판(발표)연도 : 2012
출판사 : 시문학사
흰 머리카락/이향아
젊었을 적부터 가녀리던 어머니
나리꽃 같은 어머니를 닮고 싶은데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아니었다
내 속은 내가 안다, 원래부터 냉하게 타고 났단다
체했는가 싶으면 몇 끼니씩 굶으면서
내 병은 내가 안다, 굶는 것이 약이란다
흐르는 달빛처럼 잔잔하던 어머니
어머니를 닮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모가지가 길어서 얼굴도 길어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눕힌
우수에 가득 찬 모딜리아니의 여자처럼
근심 한 가지는 거느려야 안심이던 어머니
소설 속 주인공 같던 어머니의 슬픔
그 슬픔까지도 닮고 싶었다
환갑까지 살다니 믿을 수가 없다 했고
칠순에는 칠순이 부끄러웠고
팔순에는 말하기도 징그럽다더니
구십에는 아예 입을 봉하고
허공에 빈손만 흔들던 어머니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백발을 백발대로 나부끼게 두었다
흉한 꼴 남의 눈에 뵈고 싶지 않아서
평생을 털고 불고 다듬던 어머니가
어찌할까 그 끈을 놓기 시작하다니
하얀 머리카락
순백의 포기
어머니의 무심 억울한 항복을
무너지는 가슴으로 짐작하였다.
젊었을 적부터 가녀리던 어머니
나리꽃 같은 어머니를 닮고 싶은데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아니었다
내 속은 내가 안다, 원래부터 냉하게 타고 났단다
체했는가 싶으면 몇 끼니씩 굶으면서
내 병은 내가 안다, 굶는 것이 약이란다
흐르는 달빛처럼 잔잔하던 어머니
어머니를 닮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모가지가 길어서 얼굴도 길어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눕힌
우수에 가득 찬 모딜리아니의 여자처럼
근심 한 가지는 거느려야 안심이던 어머니
소설 속 주인공 같던 어머니의 슬픔
그 슬픔까지도 닮고 싶었다
환갑까지 살다니 믿을 수가 없다 했고
칠순에는 칠순이 부끄러웠고
팔순에는 말하기도 징그럽다더니
구십에는 아예 입을 봉하고
허공에 빈손만 흔들던 어머니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백발을 백발대로 나부끼게 두었다
흉한 꼴 남의 눈에 뵈고 싶지 않아서
평생을 털고 불고 다듬던 어머니가
어찌할까 그 끈을 놓기 시작하다니
하얀 머리카락
순백의 포기
어머니의 무심 억울한 항복을
무너지는 가슴으로 짐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