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
손우호
0
359
2019.10.07 16:12
저자 : 손상호(우호)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2014
출판사 : 김천문학(33호)
달개비/손우호
유월에 용케 살아남은 풀은 꽃이 더 붉었다
불볕 들던 날의 꽃들은 이마까지 붉었지만
보름 간다던 장마가 달포를 넘기자
몸을 앓다 앓다 그만 입술이 파래진 풀,
전쟁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풋감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감나무 밑에서는 놀지도 못하는 누이,
질린 입술이 좀체 풀리지 않는다
허리 긴 풀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간 강이 아니어도
누이가 어매와 함께 숨어 지냈다는 숲,
속 동굴이 아니어도
나처럼 슬픈 기억에 매달려 있는 것의 팔은 늘 저리다
잠시 끊긴 비는 열흘도 더 내리겠지만
본래 꽃은 붉으므로 비가 갤 때는 붉게 울 것이다
소낙비 소리에 놀라는 일 없이
한번은 꼭 붉게 울 것이다
젖이 고파 울다가
누이처럼 피난길에서 목이 비틀릴 뻔했다던
꽃,
그때 질려서 아직도 입술이 시퍼런 꽃
유월에 용케 살아남은 풀은 꽃이 더 붉었다
불볕 들던 날의 꽃들은 이마까지 붉었지만
보름 간다던 장마가 달포를 넘기자
몸을 앓다 앓다 그만 입술이 파래진 풀,
전쟁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풋감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감나무 밑에서는 놀지도 못하는 누이,
질린 입술이 좀체 풀리지 않는다
허리 긴 풀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간 강이 아니어도
누이가 어매와 함께 숨어 지냈다는 숲,
속 동굴이 아니어도
나처럼 슬픈 기억에 매달려 있는 것의 팔은 늘 저리다
잠시 끊긴 비는 열흘도 더 내리겠지만
본래 꽃은 붉으므로 비가 갤 때는 붉게 울 것이다
소낙비 소리에 놀라는 일 없이
한번은 꼭 붉게 울 것이다
젖이 고파 울다가
누이처럼 피난길에서 목이 비틀릴 뻔했다던
꽃,
그때 질려서 아직도 입술이 시퍼런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