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의 그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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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의 그를 읽으며

민경대 0 659
저자 : 민경대     시집명 : 347-1
출판(발표)연도 : 2019     출판사 : 시공장
판사님의 글을 읽으며

올 이른 봄 춘천으로 전근을 왔는데, 벌써 긴 장마와 찜통더위가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근무하게 되면서 문득 약 12년 전 부산에서 근무를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필자의 집사람이 심한 가슴통증을 호소하여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담당 의사는 집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과 식습관, 가족력, 변화된 환경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조사하였고, 집사람도 그 의사를 신뢰하고 성실하게 조사에 응하였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가슴통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별 이상 없이 잘 살고 있다.

당시 필자는 그 일로 인하여 의사와 법관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와 법관은 모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환자의 아픈 곳을 치유하거나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의사나 법관의 시각이 아닌 환자나 재판을 받는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의사가 오진을 하더라도 즉시 이를 알지 못하고 아픈 부위에 대하여 수술을 받거나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오진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과거의 객관적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판사가 객관적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아 버리게 된다.

또한 진료를 받는 사람들은 의사로부터 정확한 진단과 시술을 받기를 원하고 의사도 환자의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치료하려고 하기 때문에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반대편 당사자보다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하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거나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감추고 유리한 부분은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법관으로서도 반대편 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 당사자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게 되어 기본적으로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의 증상 등에 대하여 전체적인 자료를 수집한 후 진단을 하게 되지만, 법관은 재판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로 제출한 것만 보고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법관도 의문나는 사항들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한다거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이 오해받는 것을 줄이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실관계는 당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동일한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재판받는 사람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못하더라도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비슷한 정도로 재판받는 사람 모두를 신뢰하려는 마음이 추가되어야 하고, 재판을 하는 법관의 권한보다는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좀 더 인식하여야 할 것 같다.

어설픈 논리와 개인적 경험을 마치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재판을 해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본다. 제대로 된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든 것들에 추가하여, 책이나 재판 과정에서 얻은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결론도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복잡한 사안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법관에게 무엇보다도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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