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곁에 계신다면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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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5 19:07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어머니 큰 산
출판(발표)연도 : 2012
출판사 : 시문학사
지금 곁에 계신다면/이향아
쓸데없는 말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계신다면
나는 우선 어머니와 유람을 떠나겠습니다
산천경계 수만 리 머무는 곳마다 '좋구나, 좋구나' 하시겠지요
'시간이 없어요, 나 바빠요' 그 따위 천치 같은 말들은
천둥번개 한가운데 내던져 벼락이나 맞게 두고
나중에요, 훗날에요 그따위 말도 어머니 대신 땅 속에 파묻겠습니다
어머니가 지금 곁에 계신다면
하루 종일 나란히 앉거나 누워서 옛말을 이르고
어머니는 연신 ‘생각하면 꿈 같구나’, 하시겠지요
여전히 '돈 아깝다 그냥 집에서 먹자'
걱정도 아닌 것을 걱정하겠지만 서울 장안 이름난 밥집을 찾아
구수하고 따끈하고 간간한 집에서
'우리 어머니랍니다, 맛있게 해 주세요.'
으스대는 듯 뽐내는 듯 빳빳한 새 돈을 사각대며 내놓겠습니다.
나는 왜 핑계로 다 놓쳤는지, 숱한 날 좋은 날을 건너뛰어서
어리석은 오늘에야 후회하는지
지금 곁에 어머니가 계신다면
분홍인 듯, 하양인 듯 얼비치는 비단
숙고사, 항라, 깨끼저고리를 자매처럼 입고
어머니를 앞세워 멋을 부리고
어머니밖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한가하기 끝이 없고
어머니밖에는 세상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일이나 하거라’, 그런 말은 입도 뻥긋 못하게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어머니, 어머니밖에는 아무 일이 없어
손을 잡다가 껴안다가
볼에 이마에 수천 번이라도 입을 맞추겠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쓸데없는 소리지만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면.
쓸데없는 말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계신다면
나는 우선 어머니와 유람을 떠나겠습니다
산천경계 수만 리 머무는 곳마다 '좋구나, 좋구나' 하시겠지요
'시간이 없어요, 나 바빠요' 그 따위 천치 같은 말들은
천둥번개 한가운데 내던져 벼락이나 맞게 두고
나중에요, 훗날에요 그따위 말도 어머니 대신 땅 속에 파묻겠습니다
어머니가 지금 곁에 계신다면
하루 종일 나란히 앉거나 누워서 옛말을 이르고
어머니는 연신 ‘생각하면 꿈 같구나’, 하시겠지요
여전히 '돈 아깝다 그냥 집에서 먹자'
걱정도 아닌 것을 걱정하겠지만 서울 장안 이름난 밥집을 찾아
구수하고 따끈하고 간간한 집에서
'우리 어머니랍니다, 맛있게 해 주세요.'
으스대는 듯 뽐내는 듯 빳빳한 새 돈을 사각대며 내놓겠습니다.
나는 왜 핑계로 다 놓쳤는지, 숱한 날 좋은 날을 건너뛰어서
어리석은 오늘에야 후회하는지
지금 곁에 어머니가 계신다면
분홍인 듯, 하양인 듯 얼비치는 비단
숙고사, 항라, 깨끼저고리를 자매처럼 입고
어머니를 앞세워 멋을 부리고
어머니밖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한가하기 끝이 없고
어머니밖에는 세상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일이나 하거라’, 그런 말은 입도 뻥긋 못하게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어머니, 어머니밖에는 아무 일이 없어
손을 잡다가 껴안다가
볼에 이마에 수천 번이라도 입을 맞추겠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쓸데없는 소리지만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