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곁에 계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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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곁에 계신다면

이향아 0 424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어머니 큰 산
출판(발표)연도 : 2012     출판사 : 시문학사
지금 곁에 계신다면/이향아



쓸데없는 말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계신다면
나는 우선 어머니와 유람을 떠나겠습니다
산천경계 수만 리 머무는 곳마다 '좋구나, 좋구나' 하시겠지요   
'시간이 없어요, 나 바빠요' 그 따위 천치 같은 말들은
천둥번개 한가운데 내던져 벼락이나 맞게 두고
나중에요, 훗날에요 그따위 말도 어머니 대신 땅 속에 파묻겠습니다 

어머니가 지금 곁에 계신다면
하루 종일 나란히 앉거나 누워서 옛말을 이르고
어머니는 연신 ‘생각하면 꿈 같구나’, 하시겠지요
여전히 '돈 아깝다 그냥 집에서 먹자'
걱정도 아닌 것을 걱정하겠지만 서울 장안 이름난 밥집을 찾아
구수하고 따끈하고 간간한 집에서 
'우리 어머니랍니다, 맛있게 해 주세요.'
으스대는 듯 뽐내는 듯 빳빳한 새 돈을 사각대며 내놓겠습니다.
나는 왜 핑계로 다 놓쳤는지, 숱한 날 좋은 날을 건너뛰어서
어리석은 오늘에야 후회하는지 

지금 곁에 어머니가 계신다면
분홍인 듯, 하양인 듯 얼비치는 비단
숙고사, 항라, 깨끼저고리를 자매처럼 입고 
어머니를 앞세워 멋을 부리고 
어머니밖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한가하기 끝이 없고
어머니밖에는 세상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일이나 하거라’, 그런 말은 입도 뻥긋 못하게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어머니, 어머니밖에는 아무 일이 없어
손을 잡다가 껴안다가
볼에 이마에 수천 번이라도 입을 맞추겠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쓸데없는 소리지만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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