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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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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고은영     날짜 : 19-11-09 14:03     조회 : 1472    
    · : 아버지의 사계
    · 저자(시인) : 고은영
    · 시집명 : 그리움이 어두워질 때까지
    · 출판연도(발표연도) : 2005
    · 출판사명 : 그림과책

아버지의 사계 / (宵火)고은영



1 아버지의 봄


아침 학교 등교 시간에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도
달콤한 수면은 언제나 빗금 간
서슬 퍼런 호령으로부터 왔다.
한 번도 실행되지 못한 살아있는 무형의 무기

" 안 일어나면 달려가 팬티 벗긴다!"

그 한마디에 잠이 부족한 우리는
좌석처럼 벌떡 일어나서 주방으로 달려가
한참을 졸음을 쫓아내야 했다


2 아버지의 여름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 꾸중에 반항하여
나의 말대꾸에 화가 나신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고 나를 때리려고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셨다

나는 도망 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
고목의 보리수 나무가 버틴
집 뒤 우엉 담을 훌쩍 넘던
간 큰 두려움과 희열에 들뜨던 찰나

화가 나신 아버지의
분통 터지는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나는 히죽 웃었다


3 아버지의 가을


나는 울고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서러움에 복받쳐
구들 목 군불 지피는 아궁이 앞
반 평정도 그 좁은 구석 깊숙이 박혀
문도 걸어 잠그고
사랑을 의심하면서 울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 나가서 니 누나 찾아봐라
혹시, 어디 가서 엉뚱한 짓 하는 건 아니냐?"

나는 아버지 걱정을 들으면서
사랑의 의심을 버렸다
그것이 아버지의 가을이었기 때문이었다


4 아버지의 겨울


따뜻한 물을 뎁혀
아버지 발을 씻겨드리는 날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대야 가득 아버지 큰 섬 같은 발 뿐이었다
그 시간은 얼마나 길고 지루했던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평생을 따뜻한 물에
얼굴은 씻지 않으셨다
얼음장 같은 세숫대야
차디찬 물에 얼굴을 씻으시는 아버지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갔다
눈부신 미소한 가닥 그리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겨울이 되어서

2005년 그리움이 어두워질 때까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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