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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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남자

고은영 0 532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2005     출판사 : .
바다의 남자 / (宵火)고은영


이상하게도 그의 파리한 입술엔
바다가 숨을 쉬고 있었다
무작위로 쏟아 붓는 소주잔에는
알코올이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바다가 출렁거렸다

그가 입을 열고 실룩거리며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먹빛의 절망으로 가득한
물때마다 흐르던 한숨 같은 파도 소리

정복자의 꿈을 꾸는
그는 늘 술에 젖어 바다를 헤맸다
바다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삶가운데
최고의 아름다운 잠언 같은 것이었고
살아감의 마지막 노선이었고
가장 성실하고 진지한 얼굴이었다

방어를 위한 방어 그리고 삶의 얼굴과 다양성
그 속에서 그는 52해를 굽이치다가
그만 바다가 그리워 바다로 떠나버렸다
바람불고 진눈깨비 몰아치던 동짓달
보고픈 이름들을 부르다가
홀연히 안개처럼 바다로 떠나가고 말았다

200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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