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
고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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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20:26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겨울 나무 / (宵火)고은영
어느 날 한 여자가
문패 없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달콤한 아이리시 커피를 마시며
하염없이 나를 훔쳐 보고 있었지요
떨어져 나가는 내 몸의 깃 사이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카페 창을 통하여 바람의 물결에
떠밀리듯 고요히 흐르고 있었어요
그녀는 황홀경에 탄성을 질러대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행복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또
쓸쓸해 진 얼굴로 커피를 마시더군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음지와 양지의
동시성 속에 현존하는 일이지요
마약처럼 이입되는 계절의 소명 앞에
점점 싸늘해지는 추위로 물이 들면
내 몸의 수피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나는 겨울 준비를 해요
회벽의 가슴으로 소리없이 젖어드는
뼈저린 추위를 그저 아무런 변명 없이
받아 드리는 밤이면 냉기가 나를 끌어안아요
견딘다는 것은 한 겨울옷을 벗고 전라가 되는
형벌 같은 일이기도 하지요
20081103
어느 날 한 여자가
문패 없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달콤한 아이리시 커피를 마시며
하염없이 나를 훔쳐 보고 있었지요
떨어져 나가는 내 몸의 깃 사이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카페 창을 통하여 바람의 물결에
떠밀리듯 고요히 흐르고 있었어요
그녀는 황홀경에 탄성을 질러대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행복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또
쓸쓸해 진 얼굴로 커피를 마시더군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음지와 양지의
동시성 속에 현존하는 일이지요
마약처럼 이입되는 계절의 소명 앞에
점점 싸늘해지는 추위로 물이 들면
내 몸의 수피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나는 겨울 준비를 해요
회벽의 가슴으로 소리없이 젖어드는
뼈저린 추위를 그저 아무런 변명 없이
받아 드리는 밤이면 냉기가 나를 끌어안아요
견딘다는 것은 한 겨울옷을 벗고 전라가 되는
형벌 같은 일이기도 하지요
2008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