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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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고은영 0 401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그해 여름  / (宵火)고은영


뜨거운 광기로 불붙던 여름은 갔다
창문으로 역류해 쏟아지는 햇살
나무들은 검은 그림자로 무거워지고
푸른 잔치는 끝났다고 서로 속삭인다

방어를 위한 방어 그리고 삶의 얼굴과 다양성
이름 모를 나무들의 아우성
잎새 들이 떨어졌다
매미는 푸른 바다 위에서도 그 여름
맴맴 여름을 갈고 닦았다
그리곤 어느 날 태풍이 불었다
아, 그때 최악의 조건에서
바다로 간 젊은 남자도 있었다
정녕코 생을 희구했기에
그는 바다로부터 치명적인 상처를 얻고
바다와 함께 살기 위해 바다로 간 것이다

늙은 할매의 모시 적삼이
밤새 비릿한 파도 냄새에 취하고
고기잡이 배들은 풍랑에 혼돈과 싸우고
젊은 아낙들이 방파제를 헤매고
중년 남자가 빈 소주병을 들고 울부짖던....
바다는 순결하지 않아도 가끔 제물을 탐한다

그날, 큰 눈을 말똥거리며 동생들과 나는
음습한 방안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일충봉 언덕에서 만삭이던 우리 집 염소도
오정께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고
할머니 한탄 소리가 들렸다
태풍이 지날 때까지 동생들과 나는
꼼짝 않고 음습한 골방에 말똥거리는 눈으로
비바람 치는 태풍의 눈에서 거세당한 염소가
울부짖던 소리를 하루종일 들어야 했다
염소의 배에 가득 찼던 새끼들이 불쌍했다

온 마을이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할머니는 큰 솥에 새끼 밴 염소를 푹푹 삶으셨다
자꾸만 매 엠 매에 엠 솥뚜껑에서 염소 울음이 들렸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날 저녁 우리 식구들은
염소 고기를 배불리 뜯어 먹었다
염소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도
나의 위장에서 푸른 풀을 뜯었다

"몇 마리나 들었어요?"
'세 마리, 바람도 징그럽지...."

말끝을 맺지 못하시는 할머니 몸뻬 자락에
마실갔던 찰나 달라붙은 바람이
휘잉
회리 바람으로 미끄러져 우리 심장을 두들겼다

200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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