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에 대하여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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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21:36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온유에게
출판(발표)연도 : 2014
출판사 : 시와시학
독에 대하여/이향아
지네에게는 두 개의 더듬이와 수십 쌍의 발, 이빨에는 무서운 독이 있어서
제 몸의 서른 배나 되는 도마뱀도 겁나지 않는단다
그로 힘을 뽐내고 꼼짝 못하게 휘두르는 독, 나도 가끔 지네가 부럽다
자식이 끼니를 거르고 고집을 부리면서
꺾이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때
'저 독한 것!' 부모는 한 발 물러난다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저 홀로 강한
남을 울리면서 저 홀로 편한
그러나 다 이긴 다음에는 스스로를 죽이는 독
지네는 도마뱀을 잡아먹고 더 독해지고
독해질수록 허기는 빨리 찾아와 그것으로 마침내 저를 말릴 것이다
그것은 화살일까 방패일까 갈수록 독을 지니는 것들이 많아진다
내게도 모르게 독이 올라 있을까
수시로 부푸는 내 몸이 수상하다
수시로 역겨운 내 마음이 수상하다
수상하다,
걸핏하면 섭섭하고 걸핏하면 서러운 내가 수상하다
지네에게는 두 개의 더듬이와 수십 쌍의 발, 이빨에는 무서운 독이 있어서
제 몸의 서른 배나 되는 도마뱀도 겁나지 않는단다
그로 힘을 뽐내고 꼼짝 못하게 휘두르는 독, 나도 가끔 지네가 부럽다
자식이 끼니를 거르고 고집을 부리면서
꺾이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때
'저 독한 것!' 부모는 한 발 물러난다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저 홀로 강한
남을 울리면서 저 홀로 편한
그러나 다 이긴 다음에는 스스로를 죽이는 독
지네는 도마뱀을 잡아먹고 더 독해지고
독해질수록 허기는 빨리 찾아와 그것으로 마침내 저를 말릴 것이다
그것은 화살일까 방패일까 갈수록 독을 지니는 것들이 많아진다
내게도 모르게 독이 올라 있을까
수시로 부푸는 내 몸이 수상하다
수시로 역겨운 내 마음이 수상하다
수상하다,
걸핏하면 섭섭하고 걸핏하면 서러운 내가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