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 권영하
행복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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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 09:52
저자 : 권영하
시집명 : 2019 신춘문예당선시집
출판(발표)연도 : 2019
출판사 : 문학세계사
두더지 / 권 영 하
십 년 동안 방에 담겨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서일까 중2부터
방문은 두꺼운 벽이 되었다
엄마도 문 앞에 동그스름 앉은
빈 그릇을 보고
문 닫힌 목숨이 살았음을 짐작할 뿐
메인보드 같은 도시에서 그는 두더지가 되었다
이불을 돌돌 말아
방에 굴과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쾅쾅 노크와 가족의 한숨도
입다문 방문을 열지 못했다
날마다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마우스로 벽을 탔고, 모니터 안으로 기어들어가
심연의 창을 수없이 열고 닫았다
마우스에서 손은 자랐고
손은 자라 곤궁한 몸이 되었다
널브러진 방에는, 간간이 랩만이
구두덜대며 뛰어다녔다
해수를 채운 잠수정으로 인터넷을 헤엄칠 때
모니터는 잠망경이고 마우스 불빛은 등대였다
사실 두려운 건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 2019 신춘문예당선시집(문학세계사), 현대시문학(2019)
십 년 동안 방에 담겨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서일까 중2부터
방문은 두꺼운 벽이 되었다
엄마도 문 앞에 동그스름 앉은
빈 그릇을 보고
문 닫힌 목숨이 살았음을 짐작할 뿐
메인보드 같은 도시에서 그는 두더지가 되었다
이불을 돌돌 말아
방에 굴과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쾅쾅 노크와 가족의 한숨도
입다문 방문을 열지 못했다
날마다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마우스로 벽을 탔고, 모니터 안으로 기어들어가
심연의 창을 수없이 열고 닫았다
마우스에서 손은 자랐고
손은 자라 곤궁한 몸이 되었다
널브러진 방에는, 간간이 랩만이
구두덜대며 뛰어다녔다
해수를 채운 잠수정으로 인터넷을 헤엄칠 때
모니터는 잠망경이고 마우스 불빛은 등대였다
사실 두려운 건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 2019 신춘문예당선시집(문학세계사), 현대시문학(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