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겨울 단애 (斷崖)-사랑의 서곡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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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겨울 단애 (斷崖)-사랑의 서곡 4

고은영 0 457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도심의 겨울 단애 (斷崖)-사랑의 서곡 / (宵火)고은영



1 Larghissimo (라르기시모) : Largo보다 더욱 느리게 (very broad)


" 왜 그렇게 아픈 거니?"

" 응....?... 그냥....그냥..."

"존재론적 슬픔이니 아니면, 현상학적 슬픔이니?"

침울한 그녀 눈이 젖어 있었다
그의 물음에 그녀는 다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도 더 이상 그녀의 아픔이나 슬픔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가끔 그녀는 모든 걸 잊은 듯 그에게 장난을 걸기 일쑤였다

"너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뭐야?"

" 응 그건 너를 만난 일이야"

" 정말이야?"

" 그럼 정말이지..."

" 고마워..."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깔깔대고 웃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고뇌를 잊은 듯 하나의 그늘도 없어 보였다


2 Larghetto (라르게토) : Largo보다는 조금 빠르게 (not as slow as largo)


그는 한동안 이별의 준 상처 속에서
담담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견디고 있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운명이라 받아드리고
궂은 일을 하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토록 그리운 딸 아이 얼굴이 밤마다 음영으로 스치고
불면 날아갈까 보듬던 고사리 같던 딸 아이
발가락에 밴 염분 끼조차 그는 그리웠다
현실은 녹녹치 않은 방법으로 그에게 끊임없이 인내를 요구하고
그를 시험하는 것 같았지만 모든 욕심과 욕망에서 놓여나고부터
바라보게 된 인생의 힘든 노정에서 이제 그는 모든 여건에 감사하고 있었다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면서 이것이 그가 지고 갈 운명의 몫임을 알았을 때
좀 더 따듯한 가슴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던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고
날마다 퇴근 후 아버지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 시원하시죠?"

" 그래 시원하다.... ... 고맙다 아들아"

깨끗하게 목욕시켜서 무른 부분에 오일을 발라드리면
아버진 늘 고마워하시고 행복해 하셨다
가끔 버거워질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살아 계신 동안
아버지가 건강하게 좀 더 오래 버텨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 crescendo (crec. <) (크레셴도) 점점 세게 growing louder


한 번도 이즈음에 와서 그는 이런 감정에 놓인 적이 없었다
마치 대학 시절 좋아하는 여학생을 앞에 두고 떨리던 그런 설렘
상큼한 과일을 먹을 때 느끼는.....
그는 그녀를 보면 행복했고 그녀를 보고 있으면
수평선을 바라보는 이름 모를 겨울 바다 어느 언덕쯤
해송을 등에 기대 채 평안과 자유를 음미하는 듯
어떤 강한 페이소스를 느꼈다

끝없는 사랑
그것의 질주와 역학 관계에 대해 그는 새로운 눈으로
다시 그녀의 존재를 바라봐야 하는 것에 감사했다
그의 인생에 다시는 이런 유의 어떤 떨림이나 벅찬 설렘이나
달큼한 미열에서 그리움과 보고픔을 꿈꾼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간만 되면 그녀를 떠올렸다
언제인가 그녀가 물었다

"사랑이 무언지 아니?............ 사랑은....  상대를 지켜 주는 것이래....."

어떤 사내로부터 들은 얘긴데 그 친구는 자기 마누라를 지켜주지 못했으므로
그 마누라에게 미움을 사고 쫓겨날 형편에 놓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를 만날 때면 그녀는 언제나 침착하고 평온해 보였다
도를 닦고 도인의 반열에 든 사람처럼....
어떤 의미도 어떤 형상도 그녀를 소스라치게 하거나
그녀를 흥분상태로 몰아갈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카리스마
한없이 슬퍼 보이는 눈, 도발적인 입술, 거만해 보이는 높은  코
그가 표현하는 어떤 사랑의 형이상학 표현에도
그녀는 방정맞게 반응하거나 쉬 대답하지 않는다
어떤 신비하고 편안한 미로 속 분위기 그녀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그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항상 새로운 캔버스를 준비할 줄 아는 감성과 감각의
새로운 형태의 초현실주의 명화 같은 여자였다
어떤 상황에 서든지 쉽게 젖어드는 깨끗한 백지를 준비할 줄 아는 여자였다


4 mezzo forte (mf) (메조 포르테_ 조금 세게) moderately loud


그녀가 못 견뎌 하는 못 견딤이 무엇인지 그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녀가 잘되기를 원한다
세상의 배타적인 속성을 못 견뎌 하는 여자
자신을 더럽다 거침없이 내뱉는 여자
현실과의 이질감에 놓여 펑펑 우는 여자
그는 자신의 우주에 물 주어 키우는 한 송이 장미가
그녀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며 서로에게 자유 해야 한다고 그녀는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목적도 어떤 계산도 사랑에 적을 두는 게 사랑은 아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사랑은 바라지 않고 바라보는 일로 족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아프다고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소유하고픈 욕망에서 놓여나지 못하므로 지금은 시들어 가노라 말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에겐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는 그녀의 출구로부터 떠밀려 흘러가는 의미 없는 물줄기로 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출구 안쪽 깊은 곳까지 당당하고 따듯하게 걸어 들어가
그녀의 깊은 곳을 적시는 그녀의 남자이고 싶었다


5 Presto (프레스토) : 매우 빠르게 (very fast)


퇴근길에 지하철 안은 퇴근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각양각색의 사람들 마다 사연도 제 각각 삶의 모양도 제 각각
서로 얼굴이 다르듯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색깔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  몇시에? 아니. 연락받은 적 없는데?"

단발머리 고등학생이 책가방을 등에 진 채 근엄한 곤 색 교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더니 의미 심장 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 폴립을 열었다
머리에서 맴돌고 있는 그녀의 행방이 궁금한 지금 갑자기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의 영원한 안식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어떤 모임에서 그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별반 말이 없었다
그러나 가끔 그녀의 듣기 좋은 웃음소리는 그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맑은 톤의 웃음의.......

그녀와 첫 데이트가 있던 날

"무슨 꽃을 제일 좋아해?"

꽃시장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을 때
그녀는 백 장미와 후리지아를 제일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 이때가 아니면 이런 장미는 구경할 수도 구할 수도 없습니다"

꽃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무수한 꽃의 향기와 삶의 저변에 흐르는 끈덕진 사람들에 존재의 리얼리즘
그는 남대문 새벽 시장이나 이 꽃시장에 올 때마다 새로운 행복과 삶의 활력을 얻곤 했다
꽃 가게 주인 아저씨 말대로 꽃들은 얼마나 실하고 아름답던지...
그날 그는 꽃 시장에서 거금을 들여 백장미 40송이를 샀다

꽃다발을 받던 그녀의 환하고 행복한 미소....
백장미에 놓인 그녀는 마치 한 폭의 그림같았다
백장미와 잘 어울리는 여자...........
그에게 장미 다발을 받은 그녀는
장미에 코를 박고 장미 향기를 맡으면서 참으로 행복해 했다

" 으아.... 이 향기... 너무 황홀하고. 너무 아름답다.. "

20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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