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풍경과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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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풍경과 향수

고은영 0 417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이사 풍경과 향수 / (宵火)고은영



붙박이장

8월 더위에 그는
땀을 흘리며 헉헉거리고
아흔아홉 개 상처와 하나의 행복을 담고
12층을 향해 곤돌라에서
제 몸을 뉘인 채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상처란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 거울이다

선풍기

아마도 그녀는 84년 아니면
85년 여름쯤 내게로 왔다
오래도 나를 버티어 주었다
노후 된 그녀의 숨소리는 이제 쌕쌕거린다
직선을 잃어버리고 항상
곡선의 미소밖에 지을 줄 모르는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회상에 젖는지
그녀의 미소는 이어지다 잠깐씩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뇌졸중인가
얼굴은 아직도 멀쩡하니 생생해 보이는구먼
늙어지면 죽어야 하는 이치인가

선인장

아무 잘못도 없이 타의에 의해
그의 허리가 꺾였을 때 가슴이 짠하고 속이 상했다
비가 센다고 주인집 아들이
떼어 놓은 문짝에 쓸려 그가 쓰러지던 날
그는 허리에 큰 중상을 입었다
말 못하는 미물이라고 제 고통을 모르랴
얼마나 아플까
말없이 전이되는 저 아픔
그의 허리는 흉물스럽고
끊임없이 진물을 흘리는 중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철사 하나와 테이프로
그의 상처를 친친 동여 매어주었을 뿐
나는 그가 예전처럼 자생력을 얻어 다시
꼿꼿하게 버티어 주었으면 소망할 뿐이다

향수

우아하고 고귀한 군락
늘 환상의 날개로 퍼덕이는
몽환의 나르시스다
유혹적이고 도발적인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곱게 제 케이스에 놓여
그들의 신분처럼 승용차에 고이 모셔졌다
아름다운 꿈을 꾸고 황홀한 것일수록
깨어지기 쉬운 것이므로
평생 나의 삶도 저것들처럼 생의 지경에
신비하고 우아한 향기를 발하는 시간이면 좋겠다
언제인가 향수라는 영화를 보면서
저것들이 만들어지고 정제되는 과정에서
저것들의 가슴에도 진한 고통과 아픔이 강물처럼 흘렀다
그렇지 않고야 저토록 황홀한 향기를
줄창 쏟아낼 수야 없는 일이지

200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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