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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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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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고은영 0 400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폭설 / (宵火)고은영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을까
이 시간이면 환해야 할 창에 빛이 실종됐는지 어둡다
나는 방안에 불을 켜고 창문을 열었다
잿빛으로 충만한 지상에 온통 눈이다
아, 함박눈이 세상을 지우고 있다 

문명의 흔적들이 앙상하게 뼈대만 드러낸 채
간신히 자기 형태를 지키느라 안간힘이다
커피를 내리고 향긋한 헤이즐럿에 취한 채
아침 시간을 내내 창가에 앉아있다
도심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무지하게 쌓이는 눈을 본 적이 몇 번이던가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금은 노래를 불러라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아무리 폭설이 쌓이고 또 쌓여도
우리가 살아 있음을
매몰되는 것들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신음
나무들은 절명의 노래를 부른다

들어보게나
이대로 서서
우리는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추상의 얼굴로
빙하기를 맞는 끔찍한 주검을 기다리거나 
이 하얀 겨울의 심안에
발아하는 봄의 내음을 듣기도 하며
완벽한 삶을 기다릴 때도 있다네

내 영혼의 들창에 새해 벽두부터
세상을 탈환하는 눈의 함성들이 들려온다
눈의 무게에 눌린 나무들이 소스라치며
두텁게 내려앉은 눈덩이들을 후드득 털어내고 있다
눈은 폭설이 되어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주검은 저 흰 눈처럼 깨끗한 것일까

누군가 빨간 우산을 받쳐들고
저 폭설의 새벽을 걷고
활처럼 펼쳐진 상록수 가지에
철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등장하고
아, 아 도심은 교통이 마비되고
사람들은 출근길에 매몰된 출구를 찾아
종종거리며 삶을 타전하고 있다

20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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