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正月) 이야기
고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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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3:10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정월(正月) 이야기 / (宵火)고은영
전생에 어느 바닷가 이름없는 섬마을 선술집 주인이었다는 나는
어째서 술 한 방울 못 마시고 어째서 장사 셈은 까막눈이었는지
그래서 망한 게지 쫄딱 망한 게지
오랜 태풍에 빈 가게를 지키며 그리움을 달래던 가난은
나의 이력이지만 제 것 아까운 줄도 모르고
줄곧 퍼주기만 하던 서러운 살림살이
내가 환생한 정월에 설이 지척인 기억엔
눈물 한 방울에 어른대는 별빛이 내려와 누추한 가난을 헤고
저 양어장에 갈대들이 밤새 뒹굴어 부스스 부스스 목멘 해갈에 굽이쳐도
한 보시 떠놓은 냉수에 둥근 달빛이 풍덩 빠져 촬촬 넘치는 너른 마당에
푸른빛 파도가 고독하게 거닐고 무명치마 재색으로 물들어 갈 때
짓이겨진 연탄재를 버무려 놋그릇을 닦던
할머니 뭉툭한 손길과 큰 언니 수줍은 젖비린내 가득 피던 음력 설의 풍경
일본 순사들은 놋그릇에 환장해 집집 마다 노오란 똥 색깔의 놋그릇을 수탈했다던데
우리 집 놋그릇은 추행당하지 않은 숫처녀처럼 할머니와 큰언니 손길로부터
무지하고 화려한 똥 색으로 달빛에 무섭도록 반짝거렸다
겨울의 어느 시공으로부터 발아되는 순결한 싸락 눈발이 온통 남새밭을 휘젓고
동동 뜬 구름에 가문비 나무가 되어 퍼석얼음 낀 추위에 견딜 수 있었던 건
일출봉을 돌아 우리 집 긴 골목을 달려오던 그리운 발걸음들이
극심한 배고픔에도 만삭을 꿈꾸던 빛 고운 유년의 가슴에
환한 미소로 행복하게 와 안기던 따스한 음력 설의 온기들
아, 지나 간 그것이 훈훈한 사랑이었다는 걸
이 유배된 고독에서야 비로소 나는 깨닫고 있다네
20090121
전생에 어느 바닷가 이름없는 섬마을 선술집 주인이었다는 나는
어째서 술 한 방울 못 마시고 어째서 장사 셈은 까막눈이었는지
그래서 망한 게지 쫄딱 망한 게지
오랜 태풍에 빈 가게를 지키며 그리움을 달래던 가난은
나의 이력이지만 제 것 아까운 줄도 모르고
줄곧 퍼주기만 하던 서러운 살림살이
내가 환생한 정월에 설이 지척인 기억엔
눈물 한 방울에 어른대는 별빛이 내려와 누추한 가난을 헤고
저 양어장에 갈대들이 밤새 뒹굴어 부스스 부스스 목멘 해갈에 굽이쳐도
한 보시 떠놓은 냉수에 둥근 달빛이 풍덩 빠져 촬촬 넘치는 너른 마당에
푸른빛 파도가 고독하게 거닐고 무명치마 재색으로 물들어 갈 때
짓이겨진 연탄재를 버무려 놋그릇을 닦던
할머니 뭉툭한 손길과 큰 언니 수줍은 젖비린내 가득 피던 음력 설의 풍경
일본 순사들은 놋그릇에 환장해 집집 마다 노오란 똥 색깔의 놋그릇을 수탈했다던데
우리 집 놋그릇은 추행당하지 않은 숫처녀처럼 할머니와 큰언니 손길로부터
무지하고 화려한 똥 색으로 달빛에 무섭도록 반짝거렸다
겨울의 어느 시공으로부터 발아되는 순결한 싸락 눈발이 온통 남새밭을 휘젓고
동동 뜬 구름에 가문비 나무가 되어 퍼석얼음 낀 추위에 견딜 수 있었던 건
일출봉을 돌아 우리 집 긴 골목을 달려오던 그리운 발걸음들이
극심한 배고픔에도 만삭을 꿈꾸던 빛 고운 유년의 가슴에
환한 미소로 행복하게 와 안기던 따스한 음력 설의 온기들
아, 지나 간 그것이 훈훈한 사랑이었다는 걸
이 유배된 고독에서야 비로소 나는 깨닫고 있다네
200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