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고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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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19:19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유년의 기억 / (宵火)고은영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그때 그 폐허 같았던 집 우물 하나 없던 집
초겨울이면 꽃 지고 잎 진자리 황량했던 마당의 흙과 바람
비릿한 갯내음 오라비 배에 쓰던 찢어진 그물이며
동그마니 놓인 공 모양의 스티로폼들
뼈만 남아 녹슬어가던 앙상한 손수레
빈 수국 가지가 을씨년스럽게 바람에다 일출봉을 베어 물고
우엉 돌담마다 듬성듬성 쌓여가던 싸락눈
씨암탉 새벽마다 꼬꼬댁 꼬꼬댁 알을 낳고
똥개 누렁이 굼뜬 눈으로 졸던
지푸라기 얼키설키 정지 구석 그 아득했던 무심
그날 누렁이는 보리밥 버무린 쥐덫에 쥐약을 주워 먹었는지
안절부절 정지와 마당을 넘나들며 눈동자가 허옇게 까부라졌다
큰 올케 산발한 머리처럼 미쳐만 가던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할머니 벌어진 입술 사이 빠진 앞니처럼 매양 서글프던
누렁이 입가에 하얗게 번져가던 개 거품
어쩔까나 어쩔까나
그 길로 바다로 갔는지 들로 갔는지
보이지 않던 우리 집 똥개 누렁이
어느 시공을 헤매나
곱살 맞게 꼬리를 사알랑 흔들며
초겨울 켜켜로 튼 손등에
곪아가던 헌데를 다정스레 핥던 누렁이
그날 파랗게 경악해 겁먹었던 계집아이
어눌한 눈동자가 지금은 빛을 잃어 시름겨운데
단발머리 백선처럼 마른버짐이 초췌했던
그때가 아마도 초겨울이었던가
20090103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그때 그 폐허 같았던 집 우물 하나 없던 집
초겨울이면 꽃 지고 잎 진자리 황량했던 마당의 흙과 바람
비릿한 갯내음 오라비 배에 쓰던 찢어진 그물이며
동그마니 놓인 공 모양의 스티로폼들
뼈만 남아 녹슬어가던 앙상한 손수레
빈 수국 가지가 을씨년스럽게 바람에다 일출봉을 베어 물고
우엉 돌담마다 듬성듬성 쌓여가던 싸락눈
씨암탉 새벽마다 꼬꼬댁 꼬꼬댁 알을 낳고
똥개 누렁이 굼뜬 눈으로 졸던
지푸라기 얼키설키 정지 구석 그 아득했던 무심
그날 누렁이는 보리밥 버무린 쥐덫에 쥐약을 주워 먹었는지
안절부절 정지와 마당을 넘나들며 눈동자가 허옇게 까부라졌다
큰 올케 산발한 머리처럼 미쳐만 가던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할머니 벌어진 입술 사이 빠진 앞니처럼 매양 서글프던
누렁이 입가에 하얗게 번져가던 개 거품
어쩔까나 어쩔까나
그 길로 바다로 갔는지 들로 갔는지
보이지 않던 우리 집 똥개 누렁이
어느 시공을 헤매나
곱살 맞게 꼬리를 사알랑 흔들며
초겨울 켜켜로 튼 손등에
곪아가던 헌데를 다정스레 핥던 누렁이
그날 파랗게 경악해 겁먹었던 계집아이
어눌한 눈동자가 지금은 빛을 잃어 시름겨운데
단발머리 백선처럼 마른버짐이 초췌했던
그때가 아마도 초겨울이었던가
2009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