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서 새벽까지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고은영 0 379
저자 : 고은영     시집명 : .
출판(발표)연도 : 미발표     출판사 : .
황혼에서 새벽까지 /  (宵火)고은영


초저녁부터 촉촉이 젖어드는 대지로
이른 봄을 알리는 안개가 저며 들고 있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 주차장엔
아직은 옷 벗은 나무들이 추위를 버티고 있고
여름엔 푸른 녹음에 묻혀 그 안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휑하니 그 풍경마저도 어쩐지 정겹게 다가오는 낯익음이 쓸쓸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홀로 동그마니 놓인
가게 의자에 앉아 통유리에 비치는 밤의 풍경을 응시한다
황혼에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쩨쩨한 것으로 치자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쩨쩨하다
단 돈 백 원 갖고도 따지고 오백 원쯤 되면 목숨을 건다
그렇게들 살고 싶은 것일까
잘잘못을 가려도 뻔한 이치인데 우기긴 왜 그렇게 우기는지
저 잘난 맛에 사는 일도 참 가지가지다
어쩌면 그토록 뻔뻔해 질 수 있을까
처량한 삶에 무게의 끈이 더러 사람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운 것일까
살면서 양심은 저 무의식의 도살장으로 보내고
악만 남아 험악해진 고래고래 악쓰는 표정들이 살벌하다
공짜로 먹고 공짜로 누리려는 아득한 속셈들
장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독해야 먹고산다
사람 질리는 일에 세상 둘째가 라면 서러운 일이 돼 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고차 앞에서 방뇨하는
멀끔한 저 중년 신사는 왜 하필이면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서
유독 저 봉고차의 바퀴에다가 볼 일을 볼까
조금의 찔림도 없었던 걸까
아마도 맨 정신은 아닐 것이다
새벽의 거리에서 스치는 덩치 큰 남자가 발성 연습을 한다
오, 오, 점점 커지는 목소리의 중량을 따라
공기가 흔들리고 밤이 흔들리고 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그대가 사는 별엔 혹여 천사들이 사는가
바리톤의 듣기 좋은 목청으로 확장되는 떨림 떨림들

거리는 텅 비어갔다
점점 차가운 냉기가 공기 중에 팽배하더니 안개가 걷히고
밤이 깊어가면서 진눈깨비가 내렸다
불빛에 노출된 그것들은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순간순간 보석처럼 반짝이다 사라져 갔다
가끔 자동차들이 지나갔다
늦은 밤 자동차 소리는 처량 맞다
그 고독하고 묵직한 제동 소리조차 쓸쓸하다
자동차 꽁무니로부터 휘몰이처럼 빨간빛들이 유독 어른어른
못 견딘 몸짓으로 그리움을 부채질한다

20090218
0 Comments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