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꽃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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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꽃 그늘

이향아 0 26
저자 : 이향아     시집명 : 온유에게
출판(발표)연도 : 2014     출판사 : 시와시학
배롱꽃 그늘/이향아





산등성이 배롱꽃이 하롱하롱 흔들렸다

물에 젖은 소맷자락 높이 들어서

이제 오느냐 나를 불렀다

배롱나무 몇 그루 심어 놓고서

어머니를 버리고 산에서 내려온 후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한 여름




석 달 열흘 소원은 한 가지뿐이라고

열손가락 마디마다 불을 켜 달고

평생의 그 기도를 잊어버리지도 않고

앞뒷산 메아리로 다시 보는 배롱꽃

내 어머니 뼛가루로 피어나더니

세상에서 진하고 제일 예쁜 진분홍




부끄러이 다가서서 더듬거렸다

눈물로는 용서를 빌 수 없어요

고요에 흔들리는 듯

고요를 흔드는 듯

배롱꽃 그늘로 스며들었다

배롱꽃 그늘에 나를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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