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에 두고 온 쉼표 - 홍관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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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19:21
저자 : 홍관희
시집명 : 사랑 1그램
출판(발표)연도 : 2022
출판사 : 걷는 사람
청산도에 두고 온 쉼표
홍관희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래의 내가 하도 그리워
바람에 실려
슬로시티라는 청산도를 구름 저어 다녀온 적이 있다
들도 바다도 꽃들도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을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내리우며
내가 길이 아님에도
흔쾌히 나를 통과해 주었다
슬로 슬로 걷는 내내
나의 삶처럼 구부러진 시간들이 모여들어
발자국에 발자국을 포개며
단단한 길 하나를 내고 있었다
싸목싸목 청산도를 돌아 나오는 동안
등짝을 내리누르던 세월의 무게는 녹아내려
민들레 갓털보다 가비야운 영혼
비로소 내가 나를 놓아줄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놓아주자
내가 길이 아님에도 기꺼이 나를 통과해 주던 것들이
발걸음마다 쉼표로 따라 붙었다
발걸음마다 따라붙던
쉼표 몇 개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나이테가 몇 겹은 더 늘어난 지금
쉼표도 나만큼 더 익었는 지
그 쉼표 만나러
나를 데리고 한 번 가 봐야 쓰겄다
홍관희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래의 내가 하도 그리워
바람에 실려
슬로시티라는 청산도를 구름 저어 다녀온 적이 있다
들도 바다도 꽃들도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을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내리우며
내가 길이 아님에도
흔쾌히 나를 통과해 주었다
슬로 슬로 걷는 내내
나의 삶처럼 구부러진 시간들이 모여들어
발자국에 발자국을 포개며
단단한 길 하나를 내고 있었다
싸목싸목 청산도를 돌아 나오는 동안
등짝을 내리누르던 세월의 무게는 녹아내려
민들레 갓털보다 가비야운 영혼
비로소 내가 나를 놓아줄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놓아주자
내가 길이 아님에도 기꺼이 나를 통과해 주던 것들이
발걸음마다 쉼표로 따라 붙었다
발걸음마다 따라붙던
쉼표 몇 개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나이테가 몇 겹은 더 늘어난 지금
쉼표도 나만큼 더 익었는 지
그 쉼표 만나러
나를 데리고 한 번 가 봐야 쓰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