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가을메모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수덕사 가을메모

뜨라레 0 407
저자 : 강희창     시집명 : 하늘바람별
출판(발표)연도 : 2002     출판사 :
.

수 덕 사  가 을 메 모 / 강희창 

1. 전설

마늘 각시 덕숭낭자
수탉 벼슬 수덕도령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은
하얀 버선꽃으로 피어 성심을 말하거늘
싸울아비들아 그 신성한 정토에
어찌하여 창칼을 들며
어찌하여 오욕을 놓느냐
나라만 위한다면 모두 선이더냐
나무 삭정이 꺽듯 목을 베고 버였지
경허, 만공스님이 그 업을 대신했구나

2. 대웅전

말없이 한자리에 칠백년 배가 흘러 기둥은 든든하다
평안히 좌대에 앉아 긴긴 세월 이 땅을 지켜보노니
배 흘러내리듯 가뿐히 내려트린 산자락
벼바슴 날 잡아 누렇게 드러누운 들자락
내포 땅을 그리 길들이고 그리 먹여 살렸구나
중턱까지 끌어올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이유 알리라
전 뜰에 느티나무 한껏 머리 조아려 하 세월 합장한 임은
본당 부처가 아니라 묵묵히 받쳐 온 들보와 기둥님이라
독경소리, 목탁소리 쓸데없다
소슬바람아, 하던 이야기 마저 하자

3. 여승당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여승 홀로 울적에......
비구인지 비구닌지 구별마소
내 청춘 불사를 곳
환희대, 금선대 아니어도 좋으니
덕숭총림을 들고 나는 젊은님네
내 모습 맘대로는 상상마오
다시 태어날 땐 여자로는 아닐 터이니

4. 수덕여관

수난의 세월 살며
추억뭉치 착착 쟁여 놓은 초가 객관
평생 내 생각만 그리다 간다
나혜석, 이응로 그 이름은 잊어다오
너희 스스로 알아서 사랑하며 살겠지만
내가 가졌던 거 다 필요 없다
조강지처가 뭐며 자식에 낭군도 놓았니라
머물렀던 추억은 암각하지 말 것
돌에 뱉은 내 소망만 흔적으로 남아 있으라

5. 하산길에

벌써 찬바람 속 나무들 월동준비하느라 분주한데
덕숭산 그늘에 지펴온 목숨
널어 놓은 더덕처럼 쭈그렁 노파보살이
좌대 대신 좌판에 앉아 관세음보살을 외친다
돈부 한 뎃박, 산나물 여남은 묶음, 도토리 말 가웃......
어금니처럼 자란 분신들이야 어디서들 잘 살겠지
내가 짐이 될 수는 없음이라
남들은 급작스레 가기도 잘 가드만
마른 고사리 같은 이 질긴 목숨이랴
모두 버리고 훌쩍 갈 것이니라
나그네여 인연 한푼 주시고
여기 인연 한 보따리 가져 가슈
그 보살 떠나고 나면 무덤에 하얀 버선꽃 피려나.

(2002)
0 Comments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