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던 옛집 마당에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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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7 16:18
저자 : 안도현
시집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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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내 살던 옛집 마당에 햇볕이여, 너는 어쩌자고 그리 서럽게 부서져내리는가? 담장 위에서 고추 널은 멍석 위에서, 툇마루 끝에서 끼리끼리 도란거리다가 나에게 그만 들키고 마는가? 햇볕이며, 어쩌자고 가을이면 내 살던 옛집 마당에 과꽃을 무더기도 피어놓는가? 어쩌자고 그 꽃송이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달아주는가? 아무일도 없는데 괜스레 꽃잎들 눈물 핑 돌게 하는가? 살 속의 뼈까지 다 들여다보일 것 같은 날, 너는 알겠구나, 시냇물 따라 떠났던 내 유년의 송사리떼가 이맘때면 왜 살이 통통 오른 새끼들 데리고 상류로 거슬러오르고 싶어하는지를, 물 속 내려다보듯 너, 알겠구나 내 살던 옛집 마당에 햇볕이여, 자두 같은 가슴을 가지고 있던 계집애들은 돌아왔는지, 그동안 누가 세상한테 이기고 누가 졌는지, 나는 어쩌자고 궁금한 게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