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 안도현

홈 > 시 백과 > 시인의 시
시인의 시
 
* 특정 종교나 정치.사상, 이념에 치우친 작품과 다수 회원이 삭제를 요청하는 글은 양해없이 삭제되거나 개인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 저자난에는 이름만 사용해야 하며, 별명이나 아호 등을 사용해 등록자 이름과 저자(시인)의 이름이 달라지면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 모두를 위하여 한 번에 많은 작품을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목록의 등록자 이름에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시면 해당 등록자가 올린 작품을 한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 검색시에는 리스트 하단 <다음검색>버튼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 안도현

poemlove 0 6625
저자 : 안도현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지붕이야 새로 이엉을 얹지 않더라도
왼쪽으로 빼딱하게 어깨 기울어진 슬레이트면 어떠리

먼 산에 흰 눈 쌓일 때
앞 개울가에 푸른 풀 우북하게 자라는 마을에
나도 내 집 한 채 그려넣을 수 있다면

서울 사는 친구를 기다리며
내가 기르던 까치를 하늘에다 풀어놓고
나 이발관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누우리
시골 이발관 주인은
하늘의 구름을 불러모아 비누 거품을 만들겠지

이 세상의 멱살을 잡고 가는 시간 같은 거
내 몸 속을 쿨럭, 쿨럭거리며 흐르는 강물 같은 시
빨랫줄에 나란히 펼쳐 널어넣고
무시로 바람이 혓바닷으로 핥아먹게 내버려두리

내일은 사과나무한테 가서
사과를 땅에 좀 받아 내려놓아야지, 생각하다 보면
면도는 곧 끝날 테고

나 산모롱이를 오래오래 바라보리
문득 기적 소리가 들리겠지
그러면 풍경 속에 간이역을 하나 그려넣은 다음에
기차를 거기 잠시 세워두리

내가 머리를 다 말리기도 전에
기차는 떠나야 한다며 뿡뿡 울며 보챌지도 몰라
그러면 까짓것 보내주지 뭐
기차야, 여우가 어슬렁거리는 밤길은
좀 천천히 달려야 한다, 타이르면서

내 친구는 풀숲을 더듬거리며 오리
길에 왜 사람이 없냐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이라도 그려보라 하겠지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예끼, 짐짓 모른 체 농을 걸어오겠지
0 Comments
제목 저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