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잠자리의 갈등 2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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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잠자리의 갈등 2 - 안도현

poemlove 0 7383
저자 : 안도현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잠자리가 빨랫줄에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잘난 놈 한 마리는 바지랑대 끝에도 앉아 있다
나는 바지랑대 끝을 살짝 건드려본다
순간, 아무 죄 없는 하늘이 갈가리 찢어져
마당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살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할 때가 있는 법인데
그 무렵 공중에는 잠자리떼가 유유히 날아다니는 것이다
속이 훤히 비치는 속치마 같은 날개를 단 것들이
빨래가 되어 빨랫줄에 내려앉는 것이다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아니, 저것들이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나를
겨우 똥파리쯤으로 여기는 것 아녀?
빨랫줄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바지랑대를 흔들어버린다
그러자 부근의 잠자리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고
점점 하늘 속으로 떠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아아, 그때부터였다
세상을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햇살의 알맹이처럼 빨갛게 몸을 달군 잠자리떼가
마당 가득히 날아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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