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로운 비 -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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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로운 비 - 김인경

관리자 0 3481
저자 : 김인경     시집명 :
출판(발표)연도 :     출판사 :
I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말 한번 못해본
눈뜨고
귀 듣고
혀 잘린 벙어리처럼
움츠러든 속도만이 걷고 있다

피곤한 거리는
숨조차 죽여가며
아쉬움의 시늉을 한다
반 떨어진 광고문은 안간힘을 쓰고
조롱하듯 불빛은 쏟아진다

어둠을 갈라놓으면
다시 고이는 어둠
그림자의 작업
끝나지 않을 작업은
나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거친 껍질 가른 칼
하얗게 굽은 칼이 한숨 진다
얼굴엔 피가 맺혀도
거울 없는 탓
난 모르고 걷는다

발끝이 절여도
맺힌 피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얼굴 작아지는
그림자가 조롱한 것
떨구어야 할 것을
떨구지 못한 내 잘못이야


II

악마에게서 도망친 심장의 독백
시간의 모조화석들은 귀를 막고
허파 속에서 잠이든 그림자의 호홉
진동 없이 지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울부짖지 않는다

내가 다리를 구부리지 않고 앉을 수 있을까
내가 떨어지지 않고 날 수 있을까
내가 죽지 않고
인간이란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거리와 햇빛
밤과 여름
달과 겨울
날개 부러진 그림자
그림자가 부러져 나도 부러졌다
거울을 찢어도 남아 웃는 기억들은
떠들던 자욱은 진동 없이 지나간다

터진 심장 움켜쥔 환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얀 목소리로 절규하는 그림자
그렇지 않으면 울부짖지 않는다


III

한줌 재를 먹는다
재는 피가 되어 동맥을 흐른다
외출을 꿈꾸는 허파 속에 뿌리를 디민다

걷고 있는 외로움
숨쉬지 않는 고독
울고 있는 즐거움
춥고 시려 떠나지 못하는 철새처럼
발톱을 움츠리고
나는 졸음에 속하며
산과 들은 흐려지고
냇물은 일어나 울고 있다
재는 냇물을 덮고
산은 들을 덮는다

나의 숨은 재가 쉬고
영혼은
끝없는 그림 안에 선 아이처럼
재에 온통 속하면
안으로 안으로
재를 가져가
한줌 재만을 남긴다


IV

하늘 낮은 나의 창에서
햇살은 눈가로 추락한다
잠은 깨었고
이미 서있는 그림자는
나를 부추긴다

시계의 촉수는
벌써 미래를 세고 있고
밤의 흔적은
정확한 비율의 크기로
그림자의 부분부분에 달려 있다

일어나자
무슨 고독인가


V

사랑의 고독
외로움의 즐거움
불행의 행복

떼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혼자서 땅을 파는 지렁이
내가 어느 것도 아니듯이
어느 것도
나는 될 수 없다

공교롭게 비가와도
내가 한 짓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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