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난방 - 이승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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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난방 - 이승협

poemlove 0 1788
저자 : 이승협     시집명 : 시현실 2000년 5-6월호
출판(발표)연도 : 2000     출판사 :
중앙난방

이 승 협


이사를 했다 중앙난방식 아파트
이삿짐을 정리하는 아내는
연신 싱글벙글하지만
무리를 했던 것일까 갑자기
온몸이 떨린다 몸살이 난다 약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도 춥다 오들오들 떨린다 낡은 기계처럼 덜덜거린다 방에 불 좀 땠으면 불좀 땠으면……
여기는 중앙난방이에요
아무때나 불을 때는 게 아니에요
아내는 아직도 싱글벙글

여름에는 감기 몸살에 걸리지 말 것
아파트 주민은 모두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건강할 것
똑같이 춥고 똑같이 따뜻할 것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할 것
똑같이 절망하고 똑같은 희망을 가질 것
너희들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음.

숨막히는 이 상징 앞에서
한여름의 두꺼운 이불 속으로
자꾸만 기어들며 나는
또다른 이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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