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저녁
오랜만에 창을 열고 이불을 개고 방을 쓸고
재떨이를 비운다
가스레인지엔 커피물을 올리고
숀 필립스의 음반을 꺼내 얹는다
정.말.거.룩.하.군
녹슨 기타줄을 새로 갈고
여기저기 나뒹구는 책들을 가지런히 쌓고
담배 한 개비 꺼내 문다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저녁
정신이 산만해지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아아, 이놈의 질서
벽에 붙여논 이철수의 판화는 오늘따라
삐뚜름해 보이고
앉을 듯 설 듯 채플린이 엉거주춤 서 있다
묵은 신문이나 뒤적일까
사람내 물씬 나는 이중섭의 편지들이나 다시 읽어볼까
슬픈 사내, 소 같은 사내
몇 시나 됐지
맞는 시계가 하나도 없군
제기랄


2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저녁
소나기나 한바탕 쏟아져라